선택적 신앙은 신앙이 아니다

간혹 기독교인 중 신앙이 좋다는 사람 중 실상은 그렇지 않은 사람을 본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성경의 내용을 본인이 판단해서 취사선택하는 것이다.
자기 마음에 동의가 되는 것은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가치의 근거로 사용한다.
자기 마음에 동의가 되는 것은 거부하거나 언급하려 하지 않는다.
성경보다 자신의 가치를 우선한다.

이런 사람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타난다.
첫째는 성경에서 비과학적이라고 판단하는 부분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진화를 믿기에 창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죽음을 생명의 끝이라고 믿기에 부활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기독교는 고대 이스라엘 역사와 규범을 공부하는 교양일 뿐이다.
본인은 아주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둘째는 성경에서 비도덕적이라고 판단하는 부분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으로만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진노와 가나안 족속 진멸을 떠올리기 싫어한다.
예수님의 인자하심만 받아들이고 예수님이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좌판을 둘러 엎고 채찍을 휘둘러 동물들을 내쫓은 것을 떠올리기 싫어한다.
하나님이 최후최고의 엄정한 심판자라는 것을 믿지 않고, 예수님의 초림 역시 구원과 심판의 양면성이 있음을 믿지 않으면 기독교는 근동의 도덕일 뿐이다.
본인은 세상에 법이 없어도 지금처럼 살아갈 도덕적 사람이라 생각한다.
구원은 당연히 자신같은 사람이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사회운동이나 구제운동을 하는 교인 중에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하나님은 과학과 도덕 위에 계신 분이다.
과학도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으며, 도덕도 나라와 시대에 따라 상대적인 것이 많은데 어찌 자기의 과학지식과 도덕기준으로 감히 하나님을 판단하는가.
본인은 스스로 기독교인이라 표방할 지라도 내 눈으로 보기엔 크고 높으신 하나님을 절대적인 신으로 여기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지식과 도덕으로 재단(裁斷)하여 자기가 믿고 싶은 신을 만든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모세가 없는 동안 금으로 이집트에서 섬기던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여호와’라고 이름붙인 것과 별로 다를 것 없다.

의외로 교회 안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
다들 이성적이고 도덕적이라 교회 내에서도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직분도 받는다.
그리고 은근히 자신의 이성적 기준과 도덕적 기준을 성경보다 위에 놓고 다른 교인들에게 강요한다.
덜 이성적이고 덜 도덕적인 교인들은 어리석게도 자신이 배운 성경의 가치를 버리고 설득당한다.

신앙은 자신의 이성과 도덕을, 심지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온전하심을 믿고 그분의 말씀과 행하시는 일 앞에 겸손하게 내려놓는 것이다.
성경을 취사선택하지 않고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신앙을 잘 표현한 어린이 복음성가 한 절이 떠오른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밤새도록 일해도 안 잡힌 고기 이제 와서 잡힐 까닭이 없지만
주님 말씀하시니 순종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