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의 통화

부산 내려와서 법대 동기들과 만남을 가지고 있다.
그중 한 친구가 마음에 걸렸다.
그 때 모인 동기들은 법대 출신들이 그렇듯 다들 법조인, 교수, 공무원 등이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대학시절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다.

법대생이라면 당연히 고시를 생각할텐데 이 친구는 고시 공부를 감당할 건강이 되지 않았다.
나도 일찍이 고시에 대한 마음을 접은 이유 중 하나가 건강 때문이기도 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버틸 체력이 되지 않아 고시를 접어야 하는 그 비참함이란.
오를 만한 나무에서 순간 오를 수 없는 나무가 되어 버린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그 자괴감이란.
그래서 그 친구의 마음을 조금은 공감한다.

그 친구에 대해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대학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한번은 학생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하다가 음악에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법대생과는 조금 동떨어진 분위기의 대화였기에 기억하는 것 같다.
동문 동아리에 가면 여학생들이 주로 이야기하던 음악카페(브람스… 뭐였더라, 그러고 보니 음악카페는 거의 ‘브람스’를 붙이는 것 같다) 이야기도 했다.

자기가 어떤 음반을 들었고, 어떤 감정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 같으면 어떤 부분에서 그랬는지, 그런 정서는 어떤 것인지 관련된 질문을 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때는 내가 미숙해서 호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나 자신이 부끄럽고 원망스럽다.

전화번호가 없어서 카톡을 보냈다.
“OO~~, 나 강신욱일세”
“어, 그래”
“자네 번호가 없구만. 나는 010-0000-0000”
바로 전화가 왔다.

점심 무렵이라 식사 이야기로 대화가 시작됐다.
혹시 식전이면 같이 식사하자고 하려 했는데, 시간을 벌기 위해 도시락을 싸왔고 벌써 먹었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건강 이야기로 넘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친구가 20년 전부터 공황장애를 앓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도 공황장애를 앓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앓던 10년 전만 해도 ‘연예인 병’ 운운했는데, 20년 전이면 자네는 이해받지 못하고 너무 고통스러운 시간을 오랫동안 보냈겠구만”
“자네도 공황장애였나? ㅎㅎㅎ”
내가 앓은 것이 웃겨서도 아니고 즐거워서도 아니였다.
나같은 사람은 앓을 것 같지 않은 공황장애를 앓았다고 하니, 그래서 공통분모가 있고, 공감대가 생긴 것에 웃은 것이다.
모름지기 같은 선상에서 같은 걸 느낀다고 생각될 때 우정이 더 돈독해지는 법이니.

그 친구에게 주말이나 저녁에는 뭐하냐고 물었다.
상대적으로 시간은 나지만 주말에도 초과근무를 한다고 한다.
“놀면 뭐하나,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통화를 끝내고 역시 동기인 아내도 아는 그 친구 이야기를 했다.
아내는 선뜻 우리집으로 초대하자고 했다.
나는 바로 초대부터하면 그 친구가 어색해 할 것 같으니 바깥에서 먼저 식사하고 나중에 하자고 했다.
다른 동기와 같이 초대하는 건 어떨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 친구가 낯가림이 심해서 역효과가 날 것 같았다.

오늘 하루종일 짓궂었던 돌풍과 짙은 안개가 빨리 지나가고 초여름의 훈풍이 불었으면 좋겠다.
그 친구의 마음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