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친구로부터 부친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혼할 때 들러리를 서주고, 2년 만에 첫째를 가졌을 때 제수씨 보신시켜줘야 된다며 맛있는 회를 사준 친구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가끔씩 친구 집을 드나들며 인사를 드렸는데 다시 부산에 왔을 때 편찮으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찾아 뵙지는 못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그 어르신은 백발이었는데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친구네는 할머니 때부터 원불교를 믿었다고 한다.
집안 어른이 그러시니 다들 집안 종교처럼 받아들였다.
친구는 신앙은 없지만 집안의 화목을 위해 그냥 따르는 편이다.
장례식이 원불교로 진행되기 때문에 친구는 목사인 내가 불편할까봐 그랬는지 “바쁜 줄 아는데 안와도 된다”라고 했다.
“무슨 소릴, 당연히 가야지”
금요일에 볼일이 있어 운전해서 서울로 향하고 있을 때라 토요일 오후에 빈소로 가겠다고 했다.
통화를 마치고 아내에게 말했다.
어르신을 한 번 찾아뵙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이번 장례를 통해 친구와 가족들의 마음이 많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하나님, 친구가 상주인데 장례를 잘 치르도록 해주십시오.
친구 어머님도 건강이 좋지 않으신데 건강을 지켜 주십시오.
이번 일로 가족들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토요일 새벽 1시쯤 서울에서 돌아와 오후에 아내와 함께 빈소를 방문했다.
주말에 목사가 바쁜 것을 아는 친구는 “바쁠텐데 일부러 왔구나, 고맙다”라며 맞아 주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날 봤던 친구 어머님도 오랜만에 뵙는데도 한번에 알아 보시며 “신욱이는 목사님 태가 나는구나”라고 하셨다.
나는 어머님의 손을 잡고 “오랜만에 뵙습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했더니, “오래 당뇨를 앓아서 그렇지 다른 덴 괜찮다. 그런데 얘가 당뇨가 있는데 친구들 만나면 자꾸 술을 먹어서 걱정이다”라시며 아들 건강을 염려하셨다.
“어머님, 이제 제가 자주 만나서 술 먹는 기회를 줄이겠습니다”라고 했더니 그렇게 해달라며 좋아하셨다.
빈소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집에 와서도 친구와 가정을 위해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