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론’에 유명한 ‘동굴의 비유’가 나온다.
동굴 가장 안쪽에는 쇠사슬에 묶여 동굴 안쪽의 그림자만 볼 수 있고, 메아리만 들을 수 있는 일단의 무리가 있다.
여전히 동굴 안이지만 앞에서 언급한 무리 조금 바깥에는 그림자를 만드는 모형과 조명, 그것을 묘사하는 소리가 있다.
동굴을 벗어나면 실체와 자연의 소리가 있다.
동굴을 벗어난 곳이 바로 참된 세상인 ‘이데아’이다.
철학자나 사상가는 깊은 사고를 통해 이데아를 맛본 사람들이다.
물론 모든 이데아를 경험하지는 못하고 자기가 경험한 이데아를 알린다.
그들은 모형으로, 묘사하는 소리로 열심히 알리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림자를 보고 메아리를 들을 뿐이다.
철저한 검증에 의해 발전하는 과학도 사실 그러하다.
광활한 우주를 이데아라고 한다면, 과학자는 그 우주를 다 경험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가 이해한 부분만 발표한다.
하지만 자기가 이해한 부분만큼 정확하고 완전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보통 사람들은 불완전한 표현을 보고 듣고 그것이 우주의 실체라고 믿는다.
사람에게 인식과 표현의 한계가 있다.
인간에 의한 과학도 당연히 그 한계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