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면 그 부부의 일상은 크게 달라진다.
특히 엄마들.
아무리 부부가 같이 육아를 한다고 해도 엄마의 역할이 훨씬 크다.
보채면 얼러야 하고, 손타면 안아줘야 하고, 먹고 입고 싸고 심지어 자는 것까지 혼자하지 못하는 아기의 모든 것을 해줘야 한다.
엄마는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에서 젊은 여인의 자태가 망가졌다.
헝클어진 머리에 화장기는 고사하고 부스스한 얼굴을 하고 있기 일쑤다.
잠을 자지 못해 충혈된 눈에 눈두덩이가 부어있을 때도 있다.
책 읽고, 고상하게 음악 듣고, 우아하게 커피 마시는 건 일찌감치 포기해야 한다.
심지어 친한 친구들과 만나 수다떠는 즐거움도 10년쯤 뒤로 미뤄야 한다.
(물론 포기하지 못해 직장여성이 아님에도 겨우 걷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밤 9시가 되어야 찾으러 가는 엄마들도 있다)
이 피곤하고 힘든 일을 왜할까?
젊은이들이 출산을 꺼려하는 것도 이해되는 바다.
그러나 엄마들은 행복하다고 한다.
잠이 모자라고 피곤에 쩔어 어깨가 쳐진 엄마를 향해 아기가 한 번 눈을 맞추기만 하면, 생긋이 웃기만 하면, 엄마 귀에만 ‘엄마’라고 들리는 그 흔한 옹알이라도 하면 엄마는 다시 원더우먼이 된다.
아니, 그 아기가 새근새근 잠잘 때 아기의 코에 코를 대고 숨 냄새만 맡아도 충전이 된다.
하루에 23시간 55분이 피곤해도 그 5분으로 충전이 되고 내일을 맞을 힘이 난다.
자식은 그런 존재이다.
없으면 충분히 자기도 하고, 마음대로 친구들과 만나기도 하고, 우아하고 싶으면 우아하게, 활기차고 싶으면 활기차게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생명이 주는 충전과 넘치는 에너지의 근원을 경험하지 못한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행복할 줄 알고 신앙생활을 시작했는데, 웬 골치아픈 일들이 넝쿨처럼 이어오는 지.
그러나 교회가 아니었으면 예수님의 사랑도 영생의 소망도 교회의 거룩함도 몰랐을 것이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다.
차라리 인간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자유의지를 주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우리 때문에 성품에도 없는 후회도 하시고, 슬퍼도 하시고, 괴로워도 하신다.
하지만 인간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지 안으시고 우리로 인해 기뻐하신다고 하셨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구약성경 스바냐 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