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부인의 발인예배

고등학교 선배의 부탁으로 부인장례 발인예배를 인도했다.
어젯밤 오랜만에 장례예배 순서지를 만들고 설교문과 기도문을 작성했다.
신앙이 거의 없는 유가족이 단순히 고인의 유지이기에 받아주는 정도가 아니라 진정 그들에게 위로가 되길, 또한 기독교 신앙에 마음을 열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런데 프린터가 오래된 모델이라 이미지 인쇄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가끔씩 인터넷 연결이 끊어지기도 하고, 이미지 인쇄한 부분이 조금 울어서 뒷면을 인쇄할 때 프린터 로울러에 씹히기도 해서 칼라잉크를 많이 쓰며 애써 인쇄한 것을 버리기도 했다.
유가족들을 위해 좋은 마음으로 준비하려는데 방해가 얼마나 많은지…
평정심을 지키기가 너무 힘들었다.
다 끝내고 나니 늦어도 자정 전에 끝날 일이 새벽 3시에 가까왔다.
게다가 7시까지는 자고 싶었는데 등교 준비하는 막내 덕분에 6시부터 잠을 깼다.

빈소에 도착하니 가족이 기다리고 있었다.
빈소가 만들어진 첫날 도착한 자녀들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인지, 충격이 컸기 때문인지 울지도 못하는 걸 보고 마음이 좀 그랬다.
선배도 첫날처럼 술 취한 모습이 아니라 맨정신으로 예배에 참석했다.

먼저 집례자로서 유가족이나 참석자들을 향해 고인을 생각해서 기독교식으로 장례식을 진행하는데 신심이 없더라도 진지하게 참석해 주길 부탁했다.
성경 말씀을 읽는데 자녀들이 마스크를 벗고 연신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유가족이 제대로 눈물을 흘릴, 슬픔과 아픔과 충격을 터뜨릴 기회가 없었다는 걸 알게 됐다.
준비한 설교문을 읽을 때도 가족들은 눈물을 흘렸다.
선배는 종종 ‘아멘’이라고 하기도 했다.
유가족이 자기 정서를 드러내어 다행이다 싶었다.

찬송가는 481장 ‘때 저물어서 날이 어두니’를 선택했다.
각 절마다 마지막 가사가 “주여, 함께 하소서”로서 간절한 기도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찬송가를 부를 때는 다른 사람들이 거의 부르지 않아 나와 내 아내의 특별찬송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2절과 3절을 부를 땐 나도 울컥한 마음에 음이 흔들렸다.

준비한 기도문을 읽을 때도 선배는 몇 번 ‘아멘’을 했고, 가족은 눈물을 흘렸다.
축도로 예배를 마쳤을 때, 선배는 고맙다고 악수를 청했고, 나는 선배를 꼭 안았다.

원래는 친구와 장지까지 동행할 예정이었으나, 어제 늦게 아내가 결혼 전 다녔던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돌아가셨고 오늘이 발인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선배에게 양해를 구했고, 친구에게 혼자 수고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선배는 7월 중에 따로 한 번 보자고 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이렇게라도 강 목사가 인도하는 예배에 참석할 수 있어서 좋았다”라는 선배를 뒤로 하고 장례식장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