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정리하다가 책 속에 끼워져 있던 신학대학원 졸업 사진을 발견했다.
원래 일찍 도착해서 석사모도 써보고 졸업식 연습도 해야 했다.
그런데 그날 교통정체가 심해 식이 시작하기 5분 전쯤 겨우 도착했다.
도착하니 이미 졸업식을 위해 졸업생들이 교실에서 옷을 차려입고 졸업식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나는 부랴부랴 남은 옷을 챙겨 입고 남은 석사모를 썼는데, 맞는 게 없어 그냥 살짝 얹고 뛰어갔다.
나는 2000년 2월 22일에 졸업했다.
입학하고 1년만에 IMF가 터져 공부하는 신학생도, 사역지인 교회도 어려움을 많이 겪은 시기였다.
사진 속 밝은 미소는 그처럼 쉽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과정을 마쳤다는 안도가 기쁨이 된 것 같다.
게다가 나는 최우수상 시상자라 가장 앞자리에 앉아야 했는데 헐레벌떡 늦게 허리를 숙여 뛰어들어가 나를 위해 비워 놓은 맨 앞자리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위 사진은 아마 그 순간을 누가 찍어 준 것 같다.
나는 졸업식에서 최우수상을 받는 기쁨은 누렸지만, 상품은 좀 그랬다.
이미 좋은 성경 사전을 갖고 있는 내게 아주 갖고 싶어할 만하지 않은 성경 사전을 상품으로 받았다.
상장이 따로 없고 그 사전 속지에 ‘최우수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당시 학교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이해했지만,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그냥 제대로 된 상장을 주는 게 나았을 것 같다.
그래도 자식들에게 보여주려고 그 장만 찢어 남겼다.
벌써 15년 넘게 컴퓨터로 성경 프로그램을 사용하니 성경 사전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데 자리도 없는 책장에서 두껍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한 장을 들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20년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바로 뒤에 앉아서 밝게 웃었던 목사님은 몇 해 전 소천했고, 학위를 받은 사람 중 목회의 길을 떠난 사람도 있다.
이 시대에 이 길을 가는 것이 쉽지 않지만, 쉽지 않기에 이 길을 간다.
부르심을 귀하게 여겨 쉽지 않아도 이 길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