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울타리 2021년 7월

지난 7월을 돌아보며 글을 쓰려니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떠오른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낮은울타리 소개글에 적은 것처럼 2017년 2월 고등학교 동창의 죽음에서 시작된 내 동창들을 포함한 비신자들에 대한 고민과 기도가 2018년 6월 남서울평촌교회 담임목사 사임과 부산으로 이사, 2018년 12월 서울로 이사, 2020년 12월 부산으로 다시 이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돌아보니 지금 같으면 다시 하라고 해도 못할 일을 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는 사람이 여럿이다.
그냥 평범하게 살지, 특별하게 산다고.
그냥 평범하게 목회하지, 특이하게 목회하려 한다고.
그래서 뭐 별다른 게 있냐고, 가족 고생시키는 것밖에 더 있냐고.

비신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조직관리를 우선하는 기존 교회와는 달리 꾸준히 비신자 전도를 우선하는 교회를 세우겠다고 부산 내려와서도 만 6개월만에 성경공부 모임을 시작하게 됐다.
드디어 국화 봉오리가 맺힌 것 같다.

사실 나는 버티는 걸 잘하지 못하고, 일정하게 무언가가 반복되는 것을 지겨워 하는 사람이다.
남들이 나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아주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무 증거가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이 일을 지속하고,
별나다는 비판을 들어도 이 일을 옳게 여기고 버텼다.

이것은 내가 봐도 기적이고 신기하다.
하나님이 붙들어 주셨기에 할 수 있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 방법만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비신자들을 위해 이런 무모한 시도를 하는 걸 좋게 봐주셨다고 생각한다.
또한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물심양면으로 후원하고 기도하고, 찾아와서 격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7월에 또 특별한 일은 선배 부인 장례식의 발인예배를 인도한 것이다.
교회에 적을 두고 있을 때는 거의 격주로 장례를 집례했는데 8개월만에 집례를 하니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자세한 내용은 ‘아내를 잃은 선배'(https://lowfence.net/w/1488/)와 ‘선배 부인의 발인예배'(https://lowfence.net/w/1498/)에 있다.
내가 목사이기에 어려움을 당한 가정에 해줄 수 있는 것이 있어 감사했다.

7월에는 코로나19가 다시 확산세가 심해져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상향됐다.
그래서 만남대신 전화로 중요한 소통을 했다.
일상적인 통화가 아니라 상담같은 긴 통화가 9건이나 됐다.
사역이나 건강의 어려움으로 고통당하는 목회자들이 많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직장생활을 해야할 지 고민하는 회사원, 본인도 멀리 이사하며 남서울평촌교회를 떠났지만 그 때 받았던 은혜와 지금의 신앙생활을 감사하는 성도 등이 있었다.
변화하는 시대에는 다양한 도구를 통해 소통하고 서로 세울 수 있게 하신다.

그 외 13건의 만남을 가졌고, 낮은울타리의 글은 42개를 올렸다.
예배는 계속 가정에서 가족끼리만 하고 있다.
연말에는 장소를 얻어 모임을 공개할 예정이다.

아내는 매일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새로운 책 원고를 썼고, 일단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아마 가을에 새 책이 나올 것 같다.

작년 11월에 군에 간 장남은 아직 첫 휴가를 나오지 못했다.
나오면 같이 휴가를 가려 했는데, 아직 감감 무소식이다.
기다리면 속상하니 그냥 아무생각없이 보내고 있다.

올 7월은 이열치열로 보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