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이 디자이너의 옷을 입고 런웨이를 걸으면 참 멋있다.
아주 큰 키에, 길게 뻗은 팔다리, 매끈해 보이는 피부, 무표정한 얼굴까지 독특한 매력이 있다.
모델이 입어서 멋있다고 해서 냉큼 똑같이 입고 나섰다간 낭패를 당한다.
특히 나같이 평균이하의 키에, 짧은 팔다리에, 나이가 들면서 점인지 기미인지 미백크림을 발라도 커버가 되지 않는 얼룩덜룩한 피부에는 모델의 옷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 옷이 좋아보였다면 그 느낌을 준 포인트를 잡고, 자기의 신체조건과 어떻게 어울리게 할 것인지 찾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무작정 따라쟁이가 많다.
나도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영화에 나온 주윤발의 롱코트와 중절모가 멋있게 보여 대학시절 부산진시장에서 싸구려 롱코트와 중절모까지 챙겨 입었다.
평지를 걸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신부가 신부대기실에서 예식장 들어가려고 이동할 때 웨딩드레스 자락을 잡고 올리듯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도대체 왜 그랬을까 후회막급이다.
겨울에는 새까만 롱패딩 일색으로 펭귄인지, 미쉐린맨인지, 김밥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덩어리(?)들이 거리를 가득 채운다.
대한민국의 교복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해외 언론에서 보도할 정도로 독특하다.
옷이야 몰개성적으로 입어도 된다 치자.
그러나 인생은 그럴 수 없다.
같은 배에서 나온 형제자매는 물론이고 거의 같은 시간에 나온 쌍둥이도 하늘과 땅처럼 다른 것이 인생이다.
그런데 인생을 잘 살고 싶어서, 성공하고 싶어서 누구를 ‘본’이나 ‘모델’로 삼았다고 하면 모델 옷 따라하듯, 롱패딩 따라입듯 따라쟁이 본능이 나오는 것 같다.
성공한 누구를 그대로 따라하려고 하는 것이다.
장점만 골라서 따라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내가 게으르고 모자라서라기보다 성공한 그의 인생과 내 인생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길을 갈 수도 없고, 가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맹목적으로 따라하려는 경향이 있다.
부동산으로, 주식으로, 가상화폐로 몰리는 것도 비슷한 일이라고 본다.
심지어 그 복잡한 인생을 다루는 목회에서도.
어떤 목회자가 어떤 프로그램으로 성공했다고 하면, 그 목회자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부르심을 받았으며, 어떤 환경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대상을 만나, 어떤 기도를 하고,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잘 알아보기도 전에, 나는 어떤 부르심을 받았으며, 내가 만나는 대상은 누구이며, 나는 어떤 환경에서 목회하는지 잘 살펴 보기도 전에 마트에서 샤워기 꼭지만 갈아 끼우듯 교회 프로그램을 바꿔버린다.
교회니까 당연히 예수님을 섬기고 전하는 것은 같아야 하는데, 다른 모든 것까지 같아지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목사도 다르고, 지역도 다르고, 모이는 사람도 전혀 다른 사람들인데.
심지어 교단이 다름에도 거의 차이를 느끼기 어려울 정도이다.
본받기의 대상이 되는 ‘본(本)’을 영어로 보면 ‘패턴(pattern)’이 있다.
옷 만들 때 똑같이 찍어내듯 만든다는 의미이다.
사람이 다르고, 인생이 다른데 어떻게 인생을, 어떻게 목회를 ‘패턴화’할 수 있나?
같은 교회에서도 어떻게 사람이 다른데 똑같은 방식으로 케어할 수 있나?
우리나라는 본을 패턴으로 보는 경향이 크다.
그리고 분명한 단점이 보임에도 불구하고(보려고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점검하거나 보완하려 하지 않고(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성공한 프로그램이란 이유로 무작정 따라한다.
몇 년 하다가 안되면 또 유행하는 것으로 갈아 탄다.
‘본(本)’의 다른 영어는 ‘예(example)’이다.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군상의 사회 속에서 그냥 그런 예도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성공하고 잘된 예를 그렇게 보면 안될까?
어릴 때 위인전집을 읽기도 했고, 존경하는 위인이 누구냐 또는 왜 그 위인을 존경하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비록 어렸지만 아무리 존경해도 시대가 달라 역사 속의 그분의 삶과 똑같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그분의 어떤 점이 마음에 와닿아 소박하게 그 부분을 닮고 싶을 뿐이다.
각자 다양하게 존경하는 위인을 말하는 그 소박한 소원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까?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코 유치하지 않은 어린 아이의 실제적인 지혜일지도 모른다.
인생은 각각이다.
본은 받지만 무작정 따라하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