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쯤 되었을까?
여름이면 하루에 한 잔 이상 마셨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은 지가.
시원하다는 느낌보다 마시고 나서 속이 얼얼한 느낌이 들고 심지어 배가 살살 아파온 경험을 몇 번 하고 나서 피하게 됐다.
그런데 지난 번 모임 때 너무 더워 과감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는데 마침 카페 사장님이 에어컨을 세게 틀어주시는 바람에 피부 안팎이 너무 추워 결국 다 마시지 못했다.
오늘 모임장소를 향하며 ‘따뜻한 것 마셔야지’ 생각만 했다.
메뉴판을 보니 ‘따청귤’이라는 게 있다.
“따청귤이 뭐예요?”라고 물어 보려는데 바로 아래 영어 ‘Hot’이 보였다.
자주 드나드는 곳이었지만 메뉴판을 거의 보지 않고 아메리카노나 오렌지 주스만 시켰다.
역시 ‘교과서’를 자세히 보면 많은 걸 얻을 수 있다.
기독교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을 직접 보고 읽고 질문하고 공부하면 얻는 게 많다.
“그동안 남편이나 아이들 좀 안아주셨어요?”라는 질문으로 모임을 시작했다.
지난 시간 창조와 안식을 공부하며 남편과 아이들을 안아줘야겠다는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40대 아줌마 3명은 서로 얼굴을 쳐다 보더니 “아이는 좀 안아줬는데 남편은…”하며 말끝을 흐렸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만물을 만드셨고, 또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도 만드셨습니다. 태양의 주위를 지구가 23.5도 기울어져 24시간만에 자전을 하면서 1년만에 공전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계속 움직이는 지구의 주위를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같은 달이 계속 도는 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입니다”
내가 그동안 A4지를 두 번 적은 작은 쪽지에 뭘 적으며 하는 것이 좀 안돼 보였다며 한 명이 내민 두툼한 노트의 한 면에 그림을 그리며 설명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만들며 둘 사이에도 질서를 만드셨습니다. 여자를 ‘돕는 배필’로 정하신 것이죠. 여기엔 이유가 있습니다. 집에서 누가 주도권을 갖고 있습니까?”
“저요”
“저도요”
“당연히 저죠”
“그렇죠? 가정에서 보통 여자분들이 주도권을 갖고 있습니다. 남자들도 종종 아내한테 잡혀 사는 게 편하다고 이야기하죠. 하나님이 흙으로 남자를 만드셨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들어봤습니다”
“그래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가 아니라니 다행이네요. 좀 우스개 소리같지만 만들어진 재질로 보면 남자는 옹기, 여자는 도자기입니다. 가만히 두면 둘 사이에 주도권을 누가 가질까요?”
“여자요”
“맞습니다. 센(?) 쪽이 주도권을 갖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여성의 입학이 제한되었던 사관학교가 여성에 개방되자 최근엔 입학이든 졸업이든 여생도가 수석을 차지하는 경우도 생겼지요. 각종 고시 합격생도 마찬가지이고요”
“예, 알고 있습니다”
“사자가 양보다 힘이 세니 사자가 양을 잡아 먹는 것이 자연스럽지요. 만약에 둘 사이에 같이 지낼 규칙이 필요하다면 사자에게 “양을 잡아먹지 말라”라고 하면 되지 양에게 “사자를 잡아먹지 말라”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이 본성을 아시니까 부부사이에 그렇게 질서를 만드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도 질서를 만드셨습니다. 그것은 선악과로 알려진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선악과가 무슨 과일인지 아세요?”
“사과요?”
“복숭아 아닌가요?”
“성화에 보면 사과처럼 보이던데요”
“글쎄요, 성화를 자세히 보셨군요. 사과처럼 보이지요. 옛날엔 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는 과일의 대명사가 사과였나 생각되기도 하고, 남자의 목에 튀어나온 울대뼈를 영어로 ‘Adam’s Apple’이라고 하는 것 보면 사과인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선악과의 핵심은 과일이 아닙니다. 과일의 어떤 성분이 사람을 타락시킨 것이 아니니까요. ‘과일을 따서 먹는다’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일에 하나님이 특정 과일에 대해서만 대단하고 심각한 의미를 부여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핵심입니다. 가치중립적인 일이어야만 질서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지요. 만약 하나님이 “양의 배를 가르고 창자를 씹어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하셨다면 너무 끔찍한 일이라 당연히 거부했을 것 같거든요”
“정말 그렇게 생각이 되네요”
“간교한 사탄은 여인에게 가서 선악과를 먹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질서 속에서 여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과 의논해야죠”
“그런데 여인은 혼자 판단하고 혼자 먹습니다.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타락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인이 선악과를 먹어서 타락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대표성은 아담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직접 사탄의 유혹을 받지 않았음에도 아담은 아내가 건넨 선악과를 먹음으로 신과의 관계에서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타락입니다”
“타락이라고 하면 아주 몹쓸 짓을 한 것처럼 생각되는데…”
“타락한 부부는 서로 사랑하지 않고 서로 ‘네 탓이다’ 핑계를 댑니다. 타락한 사람은 하나님을 보기 싫어합니다. 성경에는 나무 뒤에 숨고 나뭇잎으로 자신을 가렸다고 했는데 그럼 전에는 자신이 알몸인 것도 모르고 지내다가 그 때 깨닫고 갑자기 부끄러워졌다는 것일까요? 그것 역시 핑계죠. 아이들이 잘못하면 여러분들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나요?”
“아뇨”
“마찬가지로 나뭇잎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을 가리려는 도구였을 뿐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편하게 만나 안식하고 충전하는 관계가 아니니까요. 이렇게 신과의 질서가 깨어져 신을 거부하는 상태를 성경은 ‘죄’라고 하고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가리켜 ‘죄인’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궁금하신 점이나 소감을 한 번 말씀해 보실까요?”
“그럼 뱀은 그후 어떻게 됐나요?”
바로 옆에 앉은 한 명이 뭘 그런 걸 묻냐며 핀잔을 주는데 질문한 사람은 “궁금하잖아”라고 응수했다.
나는 “솔직히 궁금하죠. 그건….(여기선 중요하지 않아 생략)”이라 답했다.
옆에 앉아 핀잔을 줬던 사람이 대답했다.
“저는 교회에 가면 ‘죄인’이라고 하는 게 불편했어요. 그래도 나름 법을 지키면서 잘 살고 있는데 ‘죄인’이라고 하니. 그런데 오늘 목사님 설명을 듣고 보니 제가 죄인 맞네요”
“저도 죄인 맞는 것 같습니다”
“저도 죄인 맞아요”
솔직히 의외의 순간이었다.
전혀 기독교 배경이 없고 성경을 같이 펴서 읽는 것 자체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순순히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할 줄 예상하지 못했다.
모임을 마치고 이분들을 소개한 분에게 오늘 이분들이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했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며 “예? 정말요? 쉽게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고 말했다.
“저도 놀랐습니다”
“와, 정말 감사한 일이네요”
10시간이 넘은 지금까지도 좀 얼떨떨하다.
꿈을 꾸는 것 같은 행복과 보람에 잠겨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반복한다.
다음 모임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