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울평촌교회 담임할 때 예배당을 신축하고 장로님들과 성도가 늘어 1200명 정도 되면 200명씩 계속 분립 개척을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출석이 600명이 넘자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당시 나는 예배 후 성도들과 악수하며 내가 아는 사람은 속으로 이름을 생각하며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고, 모르는 사람이면 “잘 오셨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주일학교 아이들은 200명 전후였는데 나는 교회당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속으로 ‘이 아이는 누구네 아들’이라고 떠올렸고 할 수만 있다면 속으로 이름도 불렀다.
위임식을 할 때 나는 두 가지를 약속했다.
첫째는 솔직히 매일은 못하겠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성도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겠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위임투표를 통해 위임을 받았지만 6년 마다 신임투표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첫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는 요람을 5등분 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 동안 성도들과 가족들의 이름을 중복되게 불렀다.
덕분에 성도들이나 아이들의 이름을 잘 기억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공황장애를 앓아서인지, 아픈 기억을 잊으려 애쓰다 보니 부작용이 생겨서인지 이름을 잊는 일이 잦았다.
이름 뿐만 아니라 얽힌 사연들까지도.
새로운 등록교인들은 늘어가는데 그들의 이름을 잘 외고 형편을 기억하지 못했다.
교회당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불러 세워 “너는 이름이 뭐니? 부모님이 우리 교회 다니시니? 부모님 성함이 뭐니?”라고 물어보기도 미안해졌다.
간혹 마트에서 성도가 “목사님”하며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누군지 정확히 알지 못해 아는 척을 하는 경우도 생겼다.
나는 고민했다.
‘나는 목사인가, CEO인가?’
‘주일 설교만 잘하고 조직과 재정을 관리하면 유능한 목사인가?’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돌보는 일은 언제 하나?’
‘한 사람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는 가치는 내 삶에서 실현되고 있는가?’
목회를 시작할 때 나도 당연히 큰 교회의 담임이 되고 싶었고 잘할 줄 알았다.
그러나 담임이 되어 보니 성장을 위해 달리기 전에 그 방향이 맞는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교회 덩치가 커지면 당연히 목사와 성도와의 관계나 목회서비스의 질은 100%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들 그걸 견디며 다른 데서 보람을 느끼며 잘 해나가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복음을 전하고 사람을 가까이하는 진짜 목사이길 원한다.
예수님이 날 그렇게 대하셨듯이.
또한 한 사람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는 가치를 살고 싶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