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을 하고 5년쯤 지난 때로 기억한다.
한 성도가 자녀가 화장품 회사에 다닌다며 설날과 추석이면 스킨과 로션 세트를 선물했다.
그 자녀는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지 않다.
처음엔 사양했지만 자녀가 내게 선물하고픈 마음도 있다고 해서 받기로 했다.
나는 원래 피부가 매끈하고 좋았다.
뭘 바르지 않아도 상태가 좋았으니 얼굴에 뭘 바르는 걸 싫어할 수밖에 없다.
스킨, 로션도 싫으니 허옇게 끈적이는 썬크림은 질색이다.
그러나 40이 되며 피부가 예전같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바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화장품을 듬뿍 바르는 스타일이 아니라 1년에 하나 쓸까말까한다.
선물로 받은 화장품 세트가 그대로 있을 때가 있었다.
그러면 나는 세트 안에 있는 여행용까지 쓰면서 다음 명절까지 모아서 두 세트를 아파트 경비 아저씨 두 분께 드렸다.
난 10년 넘게 내 화장품을 산 적이 없다.
대신 한 회사 제품만 썼다.
불평이 아니다.
난 민감성 피부도 아닌데 화장품 고르는 일에 신경을 쓰는 건 너무 번거롭다.
아무 생각없이 있는 걸 쓸 수 있어 참 좋았다.
담임을 사임하고 3년이 지났다.
오늘 드디어 마지막 화장품 세트를 다 썼다.
화장품이 거의 바닥만 남았을 때 병을 거꾸로 세워 며칠을 더 썼다.
당연히 며칠간 그 성도님 생각이 많이 났다.
‘어떻게 지내실까? 건강은 괜찮으신가?’
별 말씀도 없이 명절만 되면 화장품을 보내주시던 그 마음이 생각할수록 참 감사하다.
난 크고 귀한 사랑과 존중을 받았다.
감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10년 넘게 안하던 번거로운 짓을 해야만 했다.
마트에 가서 새 화장품을 어떤 걸 사야할까, 브랜드는 뭘로 할까, 어떤 스타일로 할까 고민하며 이것저것 살폈다.
귀차니즘이 발동해 스킨과 로션이 하나로 되어 화장품을 챙겨 바르는 것을 번거로워하는 남자들도 대충 바를 수 있다는 제품을 골랐다.
새로 산 화장품을 가만히 본다.
그 성도님이 절로 떠올려진다.
무뚝뚝하게 계시다가도 한번 씨익 웃으시는 그 모습이 보고 싶다.
별 말씀 없으시던 그 음성이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