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문자

최근 두 달여 마음에 깊은 골이 패이는 일이 생겼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가족 앞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안될 것 같아 의연히 감당하는 척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너무 혼란스럽다.

한편으로 비신자들과의 모임이 무르익어 가면서 미심쩍은 눈으로 보던 사람들도 호의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염려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잠을 깨면 깊은 탄식부터 나오는 일이 연속되자 모든 일을 접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이다.

오늘 아침 신학대학원 교수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주어진 상황을 잘 분별하고, 주어진 역할을 결단하고, 이런저런 계산 없이 실천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큰 기대를 갖습니다. 의상협찬 한 건 하려 하니 계좌번호를 카톡 보시는대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마음과 기도로 응원합니다”
아마 어제 영상제작과 관련하여 SNS에 올린 글을 보신 모양이다.

나는 잠시 따뜻한 글을 몇 번 반복해서 읽은 후 답글을 드렸다.
“교수님, 격려 말씀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울타리너머 길 잃은 양들을 만나고 이끄는 일이 힘든 면도 있지만 제가 오히려 살아나는 기쁨도 있습니다”

정중히 사양했음에도 교수님은 다시 글을 주셨다.
“방송용 의상 한벌 사드릴께요. 주님의 칭찬이라 생각하고 계좌번호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하면 되지요. 축복합니다”

더 거절하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주님의 칭찬, 선생님의 칭찬으로 알고 받겠습니다”라며 계좌번호를 보내드렸다.

오후에 교수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조금 보냈으니 방송에 필요한 옷도 사고 기력을 돋구는 맛난 것도 한번 드시고 사역에 작은 도움과 마음에 격려도 되시기 바랍니다. 축복합니다”

전화를 드렸다.
교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내 속에서 참을 수 없는 울음이 터졌다.
애써 웃으며 감추려고 했지만 선생님은 제자의 울먹이는 소리를 알아채셨을 것이다.

“교수님, 이렇게 많은 돈을 보내주시면 어떡합니까?”
“똥기마이 한번 썼어요”
갑자기 튀어나온 전문용어(?)에 마지막 버팀목마저 무너져 내렸다.
“염려를 끼쳐드린 것 같아 몹시 송구합니다”
선생님은 모르는 척, 평소처럼 무심한 듯 말씀하셨다.
“부모는 자식 걱정하고, 선생은 제자 걱정하고, 자식이나 제자는 지 잘난 맛에 살고, 그런 게 인생이에요. 글에 다 표시는 못하지만 응원합니다”

짧은 통화가 끝나고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참던 눈물을 흘렸다.
교수님의 음성은 나를 예수님의 발만 보고도 눈물을 흘렸던 가버나움의 여인(눅7:36-50)으로 만들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의 여인에게 별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여인은 평안을 얻고 돌아갈 수 있었다.
교수님은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지만 전화 너머로 들리는 음성만으로도 길이 보이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까?’, ‘잘하고 있는 걸까?’ 자문하고, 길고 외로운 기도로 고통을 토로하던 내 가슴을 쓰다듬고, 내 등을 두드려 주는 것 같은 위로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