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서 중형 교회 담임을 할 때 명절이면 일주일 전부터 과일 선물이 오기 시작했다.
많을 때는 10박스에 이를 때도 있었고 적을 때는 5박스 정도일 때도 있었다.
그 땐 장모님을 모시고 살 때라 우리집 식구가 7명이었다.
물론 우리집 식구가 과일을 풍족하게 잘 먹었다.
하지만 설이든 추석이든 명절마다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청년들을 하루 날을 정해 우리집으로 불렀다.
담임목사가 먹여 주고 같이 놀아준다는 소문이 돌아 애인없는 청년은 기본이고 심지어 연애 중인 커플도 하루 먹고 놀다 갔다.
적게는 5명에서 많게는 37명이 온 적도 있다.
37명이 왔을 때는 그릇이 없어 냉큼 교회당 주방으로 가서 플라스틱 접시 50개를 공수했다.
33평 아파트에 앉을 자리가 없어 접시에 카레밥을 담아 서로 등을 대고 먹고, 서서 먹기도 했다.
또 한 박스씩은 아니더라도 과일을 이것저것 담아 세 봉지를 만들어 경비 아저씨 두 분과 청소미화원 한 분에게 전달했다.
그러면 명절 지나고 과일은 채 한 박스도 남지 않을 때가 많았다.
2018년 추석은 사임 후폭풍을 정서적으로 감당하느라 명절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고, 2019년과 2020년은 대형교회인 서울광염교회 부목사로 지냈는데, 그 때는 미혼 교육전도사님을 초대하거나, 여전도사님을 초대하거나, 난민 신분인 외국인 사역자 가정을 초대해서 같이 식사하는 시간을 가지느라 여전히 분주했던 것 같다.
2021년 설날은 부산으로 이사와서 여전히 짐 정리하고 적응하느라 약간 붕 뜬 상태에서 집들이처럼 보낸 것 같다.
이번 추석에 처음으로 울타리가 없고, 소속감이 없는 명절을 보낸다.
기분이 묘하다.
다들 선물을 사고 보내고 받는데 뭔가 썰렁하고 허전하다.
‘개척교회나 미자립교회 목사님들의 정서가 이런 것이었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정서적 허전함은 나만 가진 것이 아니다.
말을 하지 않아 그렇지 아이들도 그런 눈치다.
명절마다 선물이 오고 사람들을 부르고 북적이던 것을 보며 자란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이전 교회 성도 중 우리 가정을 기억하고 과일을 보내주신 분들이 있다.
나도 나지만 아이들도 위로를 받는 것 같다.
우리 가족 먹을 것은 공급받았으니 내가 섬길 이웃 선물만 사면 된다.
오늘 이웃에게 선물하기 위해 재래시장에 가서 사과 3박스를 샀다.
경비 아저씨 두 분과 청소미화원 한 분에게 추석 선물로 드리려는 것이다.
오늘 분리수거하는 날이라 쓰레기를 가지고 나간 김에 경비 아저씨께 “추석 전이라 과일 선물을 준비했습니다”라며 선물을 전달했다.
“아휴, 저희에게 이런 걸 챙겨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이내 청소미화원을 불러 받아가도록 했다.
청소미화원은 경비아저씨로부터 “OOO호 사시는 분인데 추석 선물 드린답니다”라고 소식을 듣더니 “아이고 우짜노, 감사합니데이”하며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나도 허리를 숙여 “명절 잘 보내십시오”라고 인사했다.
이번 명절도 허전하지 않다.
역시 나누면 풍성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