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라디오 뉴스가 귀에 들어왔다.
서울 송파구 국회의원이 지역구 아파트 단지 옆에 실버케어센터가 들어오는 계획을 뒤집어서 기쁘다고 SNS에 올렸다는 것이다.
소식을 전하는 기자가 댓글로 “그럼 실버케어센터를 어디에 건립해야 되느냐?” 물었더니 댓글을 삭제했단다.
어느 유명 논객은 그 지역 사람들은 다른 지역 실버케어센터 이용을 금지시켜야 된다고 했다 한다.
어제 하루종일 이 내용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믿는 유일신 종교이다.
그래서 다른 신을 섬기는 행위를 가장 꺼려한다.
아주 옛날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고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시나이 반도 광야에서 그들에게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율법을 주셨다.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자는 멸할지니라”(출애굽기 22:20)
고대 신정국가에서나 가능한 내용이다.
그러면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 현대 민주국가에서는 하나님만을 섬긴다는 가치가 어떻게 실현되어야 할까?
위에 언급한 계명은 아래 구절로 이어진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출애굽기 22:21-24)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유일신에게 제물을 바치면 복 받는다는 맹신이나 미신이 아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질서를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질서는 강자가 약자를 압제하지 않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신명기 16:14)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신명기 24:21)
돕더라도 적선하듯 하지 말고 그들이 수치심을 갖지 않도록 마음까지 고려한 계명을 주신 것이 하나님의 질서이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이 가치를 실현하며 사는 것이다.
성경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멸망하기 전 선지자가 그들의 죄상을 지적한다.
거기에 빠지지 않는 것이 가난한 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압제이다.
그 모습을 향해 하나님은 “너희가 날 무시했다”고 하셨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약자를 압제했고 결국 멸망했다.
민주국가에서 기독교는 개인적으로 이웃을 선대할 뿐아니라, 사회적으로 약자를 배려하는 제도와 사회안전망이 구비되는 데 힘써야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가 하나님을 잘 섬기라는 것만 가르치고 바로 이어지는 약자를 섬기라는 계명을 잘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 걸 하자고 하면 어이없게 좌파로 몰아간다.
그것이 좌파라면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하나님이 좌파의 시초이시다.
송파구에도 기독교인이 많을텐데 지역 국회의원이 만행을 저지르고도 자랑질을 하게 내버려두다니.
옛날 이스라엘이 풍요의 신인 바알을 섬겨 저주를 받았다면, 한국 교회는 재물의 신, 학벌의 신도 모자라 이념까지 겸하여 섬기는 우를 범하고 있다.
안타깝고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