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3일 밤 성경공부를 하는 중에 카톡전화가 왔다.
2000년 2월 신대원 졸업 후 한번도 보지 못했던 동기 목사님 이름이었다.
미국으로 유학가고 거기에서 목회한다고만 들었다.
부산에 숙소를 잡았고 내일 창원에서 동기 목사님들과 만날 약속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성경공부 중이라 말하고 내일 내 차로 창원에 같이 가자고 했다.
다음날 미국으로 간 후 18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는 동기 목사님 부부를 숙소 앞에서 만났다.
인삿말을 하는 중 그 목사님이 “부산이 고향이시죠?” 묻길래 “성장기를 보냈지만 고향은 아닙니다”라고 했다.
이어 “시골은 충남 논산입니다”라고 했더니
“어, 나도 논산인데… 논산 어디요?”
“양촌입니다”“나도 양촌이예요”
따지고 보니 우리 시골 바로 옆 동네가 그 목사님의 고향이었다.
나는 방학 때만 시골을 찾았지만 이 목사님은 고등학교까지 논산에서 다녔다고 한다.
내가 초딩 때 발가벗고 놀던 그 시내를 아는 사람을 만나다니.
목사님은 3년 전 내 소식을 듣고 남서울평촌교회 홈페이지에서 내 사임설교를 읽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소식을 물었다.
나는 사임의 구체적인 내용과 과정, 그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요즘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창원으로 이동하며 말했다.
목사님은 옆에 앉은 사모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동기 중에도 이렇게 사는 목사님이 있어”
7명이 같이 식사하는데 나이가 나이인지라 다들 접종완료자들이다.
그래도 테이블을 따로 앉았다.
미국에서의 목회 이야기를 듣는데, 참 기뻤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된다고 알려진 방법을 쓰지 않고 다들 요즘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하는 옛날 방식을 우직하게 해서 교회가 코로나 중에도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담임 초기에 “하나님, 교회가 빨리 성장하지 않게 해주십시오”라는 기도를 했다고 하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한국 교회는 소망이 있다.가끔은 썩은 우물 같은 곳도 있지만 곳곳에 맑은 샘 역할을 하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은 사람이나 단체가 아닌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잖아요”라는 그 목사님의 말이 종교개혁기념주일을 몇 주 앞둔 시점이라 맘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