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에는 내가 보는 성경 외에 몇 권의 성경이 더 있다.
그 중 몇 권을 소개하련다.
이미 천국에 가신 할머니, 외할머니, 아버지의 성경이다.
할머니는 아주 늦게 당시 고3이었던 나의 전도를 받고(자세한 내용은 ‘단상’에) 신앙생활을 시작하셨다.
초등학교만 다닌 촌부였던 할머니를 위해 아버지는 읽기 편한 아주 큰 성경을 구해 드렸다.
주일이면 할머니는 이 큰 성경을 가방에 삐죽이 나오도록 들고 교회당에 다녀오셨다.
햇볕이 좋은 날이면 시골집 볕에 앉아 돋보기를 쓰고 손으로 한 자 한 자 짚어 가며 개역개정 한글성경을 읽곤 하셨다.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외할머니는 기억력도 좋고 재주가 많은 분이셨다.
엄한 가정 환경으로 일제강점기에 고등학교만 졸업하셨지만 학창시절 운동도 잘하셨고, 그림도 잘 그리셨다고 한다.
운동은 모르겠지만 외할머니는 종종 꿈을 꾸시면 그 꿈을 그려서 보여주셨다.
그 때 외할머니의 그림 실력을 확인했다.
외할머니는 국한문혼용 성경을 읽으셨고, 필사도 하셨다.
외할머니 전용 노트에는 국한문 성경구절, 그림 등이 있었다.
첫 손자였던 나를 극진히 아끼고 사랑하셨던 기억이 난다.
선친은 모든 책을 깨끗하게 보셨다.
오래 보신 영한사전도 다 깨끗한데 중간 부분만 손때가 묻어 새까맣던 기억이 난다.
선친의 성경 앞표지 내부는 성경의 장과 절이 언제 구분되었는지에 관한 메모가 있다.
2013년 11월 초에 돌아가셨으니 마지막 8년을 읽으신 성경이다.
선친은 참 열심히 성경을 읽으셨다.
종종 소리내어 읽기도 하셨고, 영어 성경으로 소리내어 읽기도 하셨다.
선친은 신앙의 대상이 되는 예수님을 성경이 ‘님’자를 붙이지 않고 그냥 ‘예수’라고 하고, ‘그분’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그’라고만 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셨다.
국민일보에 그 내용으로 기고도 하셨고, 성경을 읽을 때 꼬박꼬박 ‘예수님’이나 ‘그분’이라고 고쳐 읽으셨다.
심지어 ‘예수님’이라는 표현이 좋아 교회를 설립하신 후 ‘현대인의성경’을 택했다가 이상한 성경을 보는 이단이라는 소리까지 듣기도 했다.
물론 이내 개역개정으로 바꾸기는 했지만.
선친이 대학 시절 보던 영어 성경인 홀리바이블은 이제 종이가 바스러질 것 같아 잘 만지지 않는다.
겉표지 내부에는 1965년 12월 24일이란 날짜 기록이 있다.
55년이 넘었다.
나보다 더 오래된 성경이다.
선친이 책상에 앉아 성경을 읽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사각사각 펜으로 글씨를 쓰시던 모습, 볼펜으로 쓸 때는 깨끗한 글씨를 위해 잉크 찌꺼기를 닦으려 휴지 한 장을 잘라 곁에 두셨던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