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울타리 바깥의 비신자들을 전도하기 위해 남서울평촌교회 담임을 사임할 때 겉으로는 폼 나게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속으로는 엄청 불안했다.
앞 일을 전혀 계획하지 않았고 예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불안 속에서 우연히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신 말씀이 있다.
신명기 1장 29절부터 33절까지의 말씀이다.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신명기 1:29-33)
성경도 여러 번 읽고, 신명기도 여러 번 읽었지만 그 때 처음 눈에 들어온 부분이 있었다.
(1) 이집트에서 공포스러운 큰 기적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싸우신 것이라 표현한 것
(2) 이스라엘이 힘든 광야생활을 40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아비가 아들을 안 듯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안으신 것이라 표현한 것
(3) 아무 것도 없고 여기가 거기같고, 거기가 여기같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장막을 칠 때 하나님이 먼저 가셔서 장막칠 곳을 미리 정하시고 불구름기둥으로 정확하게 인도하셨다는 것
놀랍게도 그 때부터 나는 앞 일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이 사라졌다.
뭘 할 지도 모르면서 별 걱정이 없이 태연한 내 태도를 보고 사람들은 ‘벌써 더 큰 교회로 갈 것이 정해져 있었나 보다’라고 수근거리기도 했다.
부산으로 내려간지 몇 달만에 서울광염교회에서 개척을 돕고 싶다며 연락이 왔다.
그것 역시 기도하며 결정했다.
부산에서 갑자기 서울의 대형교회로 가는 것을 보고 더 그렇게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개척을 준비하는 동안 2년간 같이 지냈던 서울광염교회 교역자들(참 착하고 성실하고 순진한 천상 목사들이다) 중 여럿이 개인적으로 “강 목사님은 집에 돈이 많으세요?” 묻기도 했다.
“왜요?”
“별 대책이 없어 보이는데 당당한 걸 보면서 우리들끼리 강 목사님은 집이 부자인가 보다라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거든요”
“솔직하게 물어봐줘서 고마와요. 근데 우리집 부자 아니예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당당할 수 있죠?”
“내가 신명기 1장 설교한 것 기억나요? 전 그 말씀을 그대로 믿어요”
지난 2년간 정말 그렇게 태연하고 당당했다.
소신껏 발언하고, 소신껏 설교하고, 소신껏 사역했다.
그래서인지 아는 성도든 안면이 없는 성도든 종종 와서 “목사님은 다른 목사님과는 좀 다르세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부산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오히려 내가 그 말씀을 잊고 다시 불안해 하고 있었다.
예수님을 보고 바다 위를 걷던 베드로가 거친 바다를 보면서 물에 빠져들어가듯 말씀에서 시선이 떠나 상황에 침몰되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번에 장소를 구하는 일을 통해 다시 그 말씀이 떠올랐다.
내가 그처럼 의지했던 말씀을 잊고 있었다는 끔찍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 말씀이 떠오름과 동시에 침몰되던 내 믿음의 배도 다시 떠올랐다.
이미 주신 말씀이 나를 붙잡는다.
다시 기억한 말씀이 나를 회복시킨다.
지금도 살아있는 말씀이 나를 이끄신다.
나는 다시 믿음의 항해를 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