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학창시절, 우리 가족은 늘 가정 예배를 드렸다.
그때 빠지지 않던 것이 아직 믿지 않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위한 기도였다.
어떤 때 선친은 그 기도를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셨다.
나와 내 동생도 당연히 가장 큰 기도제목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할머니는 새벽이면 정화수를 떠서 장독대에서 비는 분이셨고, 나는 자주 그러고 계신 걸 봤다.
명절이면 대가족이 모여 제사를 지내야 하는 집안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정식으로 밤 12시에.
내가 어릴 때 아침에 일어나면 종종 꼭지 부분이 날아간 과일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아무 생각없이 그 과일을 먹으려 하면, 할머니가 얼른 말리시며 다른 과일을 내주신 기억이 있다.
나는 할머니가 번거로우실까봐 “할머니, 새 것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그냥 먹을께요”라고 했는데, 실은 기독교인인 내가 제사상에 올랐던 과일을 먹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할머니의 배려였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왜 그랬는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고3 때 더이상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지내시면 안되겠다고 여겼다.
늘 그랬듯이 여름방학 때 시골에 가기전 한동안 “이번에 시골 가면 꼭 할아버지, 할머니께 전도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 여름방학 때 시골가는 길에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여러 가지 멘트를 생각하기도 했다.
시골집에 도착하니 할아버지는 외출 중이셨고 할머니만 계셨다.
먼저 할머니께 절을 했다.
할머니는 “더운데 오느라 수고 많았다”고 하셨다.
동생과 나는 다시 일어난 뒤 앉았다.
이제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그냥 무릎을 꿇은 채 할머니께 다가가 덥석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 예수님 믿으시면 좋겠어요”까지 했는데, 그 이후론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그 전으로 할머니의 손을 잡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할머니의 손을 잡은 순간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동생과 나는 한참 눈물콧물을 흘리며 소리내어 울었고, 할머니도 같이 눈물을 흘리셨다.
“이제 그만 울어라” 말씀하신 할머니는 기적같이 그 다음 날 새벽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셨다.
선친의 30년 기도가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새벽에 잠을 깨면 그냥 교회에 가셨는데, 어떤 때는 너무 이른 시간에 가서 목사님이 나오실 때까지 교회 청소를 하신 적도 있다고 하셨다.
후에는 주일이면 온가족이 함께 예배당에 가서 예배하는 기쁨을 누렸다.
할머니는 나중에 집사 직분까지 받으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따라 바로 교회당에 나가지는 않으셨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교회당에 나가는 할머니의 변화에 적잖이 놀라신 것 같았다.
우리는 “이제 할아버지도 교회에 나가셔야죠” 했다.
할아버지는 의외의 말씀을 하셨다.
“나도 나가려고 하는데 전부 여자하고 애들밖에 없어서…”
시골 교회는 정말 그랬다.
할머니들과 몇몇 젊은 아주머니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만 있는 곳이 교회였다.
할아버지는 교회당에 다니시진 않으셨다.
가끔 채근하듯 말씀드리면 딴 곳을 보시며 “마음으로 믿지”라고 대답하셨다.
나중에 천국에 가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뵐 기대를 한다.
첫 손자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셨던 두 분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