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울광염교회에 2년간 있을 때 법적으로 종교인들도 모두 세금신고를 하게 됐다.
교회에서 세금신고를 했고 그에 따라 고지된 건강보험료를 납부했다.
서울광염교회를 퇴직하고 부산으로 이사와서 아무런 수입이 없는 상태가 되었는데도 건강보험료는 수입이 여전한 것을 상정한 채 고지되었다.
건강보험공단에 가서 사정을 말했더니 지금 수입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내라고 하길래 서울광염교회에 의뢰해서 퇴직증명서를 받아 제출해서 조정을 받았다.
그것이 지난 2월의 일이다.
그런데 지난 11월에 건강보험료가 인상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현재 납부금액보다 두 배가 넘는 금액이 고지되었다.
2020년 소득신고한 것을 근거로 인상한다는 것이다.
건강보험공단을 찾아갔다.
의자 뿐 아니라 홀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다른 사람들의 상담내용을 들으니 대부분 보험료 인상고지를 받은 것 때문에 온 것 같다.
한참을 기다려 내 차례가 됐다.
세 개의 창구 중 가운데로 가서 앉았다.
“보험료가 인상된다고 해서 왔습니다”
“2020년에 소득신고하셨네요. 그대로 부과된 것입니다”
“그 때는 소득이 있어서 신고를 했지만 2020년 12월에 사임을 해서 퇴직증명서를 냈고 올 2월에 경감을 받았습니다. 이후로 수입이 없는데 증액한다고 하네요”
“그러면 교회에서 일을 하시지 않는 겁니까?”
“예”
“그런데 지난 7월에 규정이 바뀌었습니다. 종교인은 기타소득으로 신고하는데, 기타소득으로 신고한 경우에는 조정이 불가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냥 1년간은 이대로 납부하셔야 합니다”
“퇴직증명서를 냈는데도 그런가요?”
“예, 규정 바뀌었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요?”
“예”
규정이 그렇다는데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주차장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있다가 그냥 돌아왔다.
집에 와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다음날 퇴직증명서를 인쇄해서 또 건강보험공단을 찾아갔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어제 그 직원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세 개의 창구 중 가운데가 아닌 좌우에서는 설명이 더 자세하고 뭔가 해결되는 것 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은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제 그 직원 앞으로 다시 갔다.
퇴직증명서를 보여줬지만 직원은 어제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소득신고는 2020년이고 올해엔 소득이 없는데 갑자기 두 배 넘게 인상하는 법이 어딨냐고 했더니 직원이 갑자기 자리를 떴다.
화장실을 갔나 했더니 올해 7월에 개정됐다는 규정집을 들고 왔다.
“여기 보세요. 기타소득으로 신고한 경우 원칙적으로 조정불가라고 했잖습니까? 종교인은 조정이 안됩니다”
내 눈에도 ‘조정불가’라는 글씨가 크게 보였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종교활동을 중단하셨습니까?”
“아니요”
나는 여전히 목사이고 성경을 가르치고 있으니까.
“그러면 기관이 폐쇄된 경우만 조정가능인데 서울광염교회가 폐쇄되었습니까?”
“아니요”
“그러면 안됩니다. 1년만 이렇게 내시고 내년에 조정신청 하시면 됩니다”
나는 다시 할 말을 잃고 그냥 일어서야만 했다.
내가 상담하는 소리는 대기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다 들렸다.
억지주장하다가 꺾인 것 같아 부끄러웠고, 그래서 속상했다.
출입구까지 나오다가 멈춰서 다시 규정을 찬찬히 봤다.
‘해촉에 준하는 경우… 예외적으로 조정 가능’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바로 퇴직한 경우를 말하는 것 아닌가!
몸을 돌려 다시 들어가 번호표를 뽑았다.
이번에는 세 자리 중 가운데가 아닌 오른편에 배정됐다.
나는 내 이야기를 반복했고 처음엔 개정된 규정 운운하는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찍은 규정을 보여주며 ‘해촉에 준하는 경우에는 조정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냐고 질의했다.
퇴직증명서를 냈는데 왜 조정이 불가하다고 하느냐고 물었다.
담당직원이 뒤쪽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아마 윗사람에게 물으러 간 것 같다.
다시 나오더니 전화를 걸었다.
어디에 전화하는 거냐고 물으니 본부란다.
통화후 규정에 있는 ‘직상위단체’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제가 기독교인이 아니라 잘 모르는데, 교회는 교회가 소속된 교단이나 단체가 있다면서요. 이 교회에서는 퇴직했지만 저 교회에서는 일할 수 있으니 그 교회가 아니라 소속된 교단이나 상위단체의 사실확인서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제 뭔가 분명해졌다.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나왔다.
서울광염교회에 연락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내가 퇴직했다는 소속노회의 사실확인서가 필요하다고 알렸다.
그리고 부산으로 이사와서 소속된 노회에 연락해서 내가 부산에 와서는 어느 교회에 소속되어 일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확인서를 요청했다.
얼마 후 양쪽 노회로부터 각각 사실확인서가 도착했다.
사역하는 교회가 없는 목사를 ‘무임목사’라고 부르고 노회명부에도 따로 기록된다.
노회촬요에 내 이름이 거기에 기록된 것을 보고 솔직히 속이 좀 상했다.
교회가 없는 ‘무임목사’는 엄밀한 의미에서는 호칭으로 목사라고 불러주기는 하지만 사실 목사가 아니다.
목사가 신분이 아니고 직분인데, 목사로서의 목회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회 내부적으로는 무임목사로 계속 있는 사람들에 대한 조치를 의논하기도 한다.
내가 거기에 이름이 올려져 1년간 있었다는 사실확인서를 내 눈으로 보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오늘 건강보험공단을 다시 찾았다.
세번째 방문이다.
번호표를 뽑았는데 사연을 설명할 필요가 없는 오른쪽 직원을 만났다.
감사했다.
퇴직증명서까지 준비된 서류를 내밀었다.
이분들로서는 평소 보던 서류가 아니니 한참 쳐다 본다.
서울의 노회에서 보낸 서류를 보며 “서울에서는 퇴직을 하신 것 확인했고… ” 그런데 부산의 노회에서 발급한 서류를 보면서 “여기에 소속해서 일하셨네요” 한다.
“거기에 임지가 없어 일하지 않는 ‘무임목사’라고 되어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내 입으로 그 말까지 하려니 속상했다.
하지만 이분들이 ‘무임목사’라는 용어를 알 리가 없으니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아, 무임목사가 그런 뜻이군요”
다시 한참을 보더니 서류를 한 장 내밀었다.
보험료 조정에 관한 서류였다.
이름 쓰고 싸인하면 조정이 된다고 했다.
그리곤 거의 원래대로 돌아가는 액수를 적어줬다.
“이제 끝난 건가요?”
“예. 이미 나간 고지서는 어떻게 할 수 없고 12월 10일에 통장에서 방금 적어드린 그 액수만큼만 빠져나갈 겁니다”
“감사합니다”라며 일어섰다.
매달 20만원 정도 1년간 더 내야할 일이 캄캄해서 이리저리 전화하고 뛰어다닌 보람이 있다.
잘 마무리되어 한숨이 나왔다.
다시 창구 직원을 향해 “잘 처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출입구를 나오는데 마치 돈을 번 것처럼 흐뭇하고 좋은데,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 허전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다.
지난 20년간 이런 일로 내가 직접 뛰어다니고 처리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중형교회의 담임을 할 때는 물론이고, 잠시 시스템이 잘 갖춰진 대형교회의 부목사로 있을 때에도 이런 일로 신경쓸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직접 하고 다니려니 이 자체가 생소하고 어색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은 물론이고 소규모 교회의 목회자들은 늘 겪는 일이다.
내가 크고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났을 때에는, 작고 낮은 울타리를 만들려 할 때에는 새로운 길을 여는 폼나는 개척자의 낭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을 들여 직접 움직이고, 부대끼고, 겪어내고, 처리해야 하는 많은 일들이 있다.
그동안은 누군가의 수고에 의해 내가 신경 쓸 필요없이 배려 받던 일들이었다.
새삼 그분들의 수고에 다 감사하지 못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오늘 이 일을 처리하느라 오전을 다 보냈다.
‘시간 아깝게 이런 일에 반나절을 보내다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젠 이런 일을 내가 다 챙기며 시간을 들여야 한다’라고 깨닫기도 한다.
두 주간 동안 직접 돌아다니기도 하고 여기저기 전화도 하면서 보험료 재산정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얻었지만 어쩌면 무형의 깨달음이 더 큰 성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