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속도

예전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요 세계적 부호인 빌 게이츠가 쓴 책이 우리나라에 소개될 때 이 제목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도 구입했으나 목차를 보고 몇 페이지 읽다가 그냥 덮었다.

예전 담임을 할 때는 생각의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었고, 그렇게 스스로를 훈련했다.
챙길 것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예배, 이웃 사람들이나 단체와의 관계, 새신자, 소그룹, 소그룹 리더 모임, 주일학교, 당회, 제직회, 조직, 담당자, 재정, 선교, 구제, 기독교연합회, 일반행정, 건물관리, 리더 훈련, 절기행사, 심지어 주방까지.
위임을 했음에도 최소 내게 보고가 되거나 결국 결정을 요구하는 일들이 많았다.
중형규모의 교회는 아직 담임목사가 결정하고 모든 책임을 지는 스타일이 대부분이다.

각각의 분야에 대해 단기적인 문제, 장기적인 문제를 생각하고, 각각에 대해 상황을 고려해 1안, 2안, 3안을 생각한다.
그러니 생각의 속도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각 담당자와 의논하여 내용을 결정하고, 그 다음을 또 생각한다.
사실 독서를 포함해서 설교나 강의를 준비하는 일을 제외하면 대부분 내가 직접 하는 일은 담당자와 만나거나 전화하는 일이었다.
그러면 일은 진행됐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곤란을 느낀다.
생각의 속도는 여전한데, 하나하나 내가 직접 몸으로 해야 한다.
게다가 몸으로 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가 직접 하려니 속도가 아주 느리다.
스스로가 답답하기도 하고, 게으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는 생각의 속도를 늦추는 연습을 한다.
전에는 ‘그 다음은?’이 자동적으로 따라다녔지만, 이제는 ‘그 다음은 모르겠다’를 되뇌인다.
몸으로 감당하느라 그 다음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아주 지키기 어려운 말씀 중 하나가 바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마태복음 6:34)라는 말씀이다.
누가 염려하고 싶어서 하는가?
염려가 되는 걸 어찌하는가?
그 염려가 심해 공황장애도 심하게 앓았다.

그러나 요즘은 이 말씀대로 많이 사는 것 같다.
주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치거나 성령이 너무도 충만해서 염려하지 않는 수준이 된 것이 아니라 몸으로 떼울 때는 염려할 여유가 없고, 밤에는 너무 피곤해서 내일 일을 염려하려다가도 그만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