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성탄절, 케이크

딱 1년 전인 12월 20일에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왔다.
그때 전국은 부동산 대란으로 난리도 아니었다.
집을 구하러 두 달 동안 매주 부산을 내려왔다.
그 사이 서울에서 우리가 살던 집은 세입자가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을 마쳤다.
마음이 급해져 생각보다 금액이 컸지만 계약을 하겠다고 하면 갑자기 집주인이 사정이 생겼다며 집을 거둬들이는 것을 몇 차례나 경험했다.
농락당한 기분이 들 정도로 마음이 상했다.

해운대가 아닌가 해서 부산대 근처로 가서 오랫동안 그 근처에서 살고 있는 대학 동창의 도움을 받아 여기저기로 다녔다.
그쪽에서는 집을 보지도 못했다.
정말 갈 곳 없는 상황이 되어 난감할 때 해운대에서 우리 부부와 여기 저기 집을 보러 다닌 부동산 권사님(나중에 낮은울타리 모임장소도 소개해 주신 분)으로부터 저녁 7시쯤 전화가 왔다.
급매로 나온 것이 있는데 시간이 늦어도 보겠냐는 것이다.
새벽이나 한밤중이라도 봐야 되는 형편이라며 퇴근 시간 정체 속에서 다시 해운대 쪽으로 갔다.

이미 캄캄해진 8시에 집을 봤다.
좋고 말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여기 말고는 없으니.
그런데 감사하게도 시세보다 싸게 나왔다.
바로 가계약금을 넣었고, 이후 정식 계약을 해서 지금 집을 얻게 됐다.

싸게 얻기는 했지만 25년전 새시가 그대로 붙여져 있는 낡은 집이었다.
나름 내부수리는 했지만 우리가 쓰기에는 곤란한 수준이었다.
근래 모친의 집을 수리한 친구 목사로부터 인테리어 업체를 소개받았다.
세부 인테리어를 위한 소재나 디자인을 위한 선정을 위해 몇 차례 만나기는 했지만 현장에는 거의 가보지 못했다.
두 달간 서울부산을 오간 탓에 몸에 무리가 가기도 했고, 서울에서 정리할 일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냥 인테리어 대표님을 믿고 맡겼다.

성탄절은 연말의 즐거운 휴일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아기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가 로마 황제의 명령을 따라 고향에 호적하러 왔지만 여관을 얻지 못해 민가에서 짐승들을 집안에 들여놓는 곳에 겨우 자리를 얻어 예수님을 출산한 것이다.
예수님이 나중에 “인자가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지만, 실은 태어날 때부터 부동산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한 것이 의식주라고 한다.
낮동안 먹을 음식이 필요하기도 하고, 입을 옷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하루의 1/3을 보내는 휴식을 위해서 집이 필수적이다.
그런 집이 우리 가족에게 허락된 것이 성탄절을 앞두고 너무도 감사하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이사야 53:5)

아내가 이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내의 친구에게 수제 케이크 제작을 부탁했다.
하나는 아내가 부동산 권사님께 드리고, 하나는 내가 인테리어 대표님께 전달하기로 했다.

부동산 권사님께 아내가 전달한 케이크 [사진 강신욱]
인테리어 대표님께 내가 전달한 케이크

인테리어 대표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마침 사무실에 계셨다.
우리 부부의 뜻을 전하며 “대표님 덕분에 좋은 집에 살게 되어 감사합니다”라 인사했더니, “저도 목사님 덕분에 우리 딸 서울에서 좋은 교회 소개받아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실은 이틀 전에 제 생일이었는데 오늘 파티 한 번 더 해야겠네요”라고 덧붙였다.
“그러세요?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목사님, 실은 다른 곳에서 인테리어 가게를 열었다가 이곳으로 옮기면서 상호를 ‘플로잉하우스’라고 한 이유가 예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 매출이 3배로 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더 흘려 보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런 의미가 있었군요. 꼭 그렇게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