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예배

2021년 12월 31일 낮에 셋째가 물었다.
“아빠, 송구영신 예배해요?”
“그래야지”
“그럼 11시 30분에 해요”
“왜?”
“30분 만에 끝내게요”
“다 생각이 있었구나”

아내가 이틀 전부터 심한 몸살을 해서 약을 먹고 겨우 진정을 시켰는데, 오늘밤 다시 머리가 아프고 열이 오른다고 진통제를 먹고 누우며 셋이서 밖에서 예배하면 자긴 방에서 듣겠다고 했다.
송구영신예배를 할 분위기가 아니다.
난 11시에 아내가 누운 자리 옆으로 딸들을 불렀다.

이미 약을 먹고 누운 아내가 말한다.
“힘들다고 나가서 하라니까 왜 들어와?”
“짧게 할게”
엄마 옆에 따라 누운 막내가 한 사람씩 다섯 문장으로 된 기도를 하고 마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어떻게 하든 짧게 끝내 보려는 심산이다.
나는 오늘은 그 동안의 송구영신 예배처럼 하지 않고 2021년 한해동안 기억나는 사건이나 감사한 일을 하나씩 이야기하고 아빠가 기도하고 마치자고 했다.
셋째는 내가 제안한 것이 더 짧을 것 같다며 그렇게 하자고 했다.

누가 먼저할까를 정해야 했다.
셋째가 막내를 향해 “너부터”라고 하니, 언니를 향해 한바탕 쏘아 붙이며 “언니부터 해”라고 했다.
내가 막내부터 차례로 해서 아빠가 마무리 기도를 하려 한다고 달랬다.
이 때 아내가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했다.
지는 사람이 먼저하는 걸로.
의외로 가위바위보로 은혜롭게 결정됐다.

“안내면 진 거, 가위 바위 보”
셋째가 구령을 붙였다.
딸들은 바위를 내고 아내와 내가 가위를 냈다.
딸들은 환호를 울렸다.
아내와 내가 다시 가위 바위 보를 해서 내가 졌다.
두 딸의 승부는 셋째가 졌다.
나이 많은 순서로 하게 됐다.

내가 “2021년은…” 하며 이야기를 꺼내는데 갑자기 셋째가 눈물을 흘렸다.
막내는 “언니 울어?”라며 놀리면서도 얼른 휴지를 갖고 왔다.
셋째는 “내가 왜 이러지?” 하며 눈물을 닦고, 아내는 “나도 일어나야 되겠구나”라며 아픈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았다.
“아빠가 분명히 기도하고 확신을 얻었지만 하나님 일 한답시고 가족과 충분히 나누고 의논하고 기다리지 않은 채 따르도록 강요하듯 한 것 정말 미안해”라고 말하는데 나도 눈물을 흘렸다.
“오빠들도 그렇고 너희들이 멀리 이사하고 적응하느라 많이 힘들었는데, 그걸 통해서 아빠가 ‘이제 이렇게 하면 안되겠구나’를 깨닫게 된 것이 감사하고, 가족들이 여전히 아빠가 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도와준 것이 감사해.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게”

말을 마치자 막내가 조용히 박수를 쳤다.
화자를 격려하는 의미라고 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진솔하게 기억나는 일들과 감사의 내용을 말했다.
사뭇 진지했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
심한 사춘기를 앓은 막내는 오히려 웃으며 여유있게 이야기를 잘했다.
올 한해동안 정말 많이 성장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어서 내년 소망도 돌아가며 각자 말했다.
계획보다 시간은 많이 길어졌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고 오히려 두 딸들이 아주 진지하게 참여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기도했다.
우리 가족이 어려운 일을 겪으며 각자 바닥까지 떨어지고 심하게 부딪혔지만 그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더 끈끈하게 하나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청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는 네 자녀의 앞길을 인도해 달라고.

송구영신예배 전용 찬송인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부르지는 않았지만 2021년 12월 31일 우리 가족에겐 필요하고 적절한 예배였다.
마치고 서로 “올해 수고했다”며 격려했다.
송구영신예배를 통해 우리 가족이 서로 마음을 터놓게 되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