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결심 – 힘 빼기

모든 스포츠 종목을 배울 때 코치로부터 끊이지 않고 듣는 이야기가 “힘을 빼야 된다”는 말인 것 같다.
나는 늦게 수영을 배우면서 그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깨달았다.

빠져 죽지 않으려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이왕이면 좀 빨리 가려고 배운 걸 기억하며 열심히 팔다리를 휘저었다.
점점 빨리 나아가긴 하는데, 앞에서 수영하던 어르신을 추월하기도 하는데 숨이 차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나에게 추월당한 어르신은 멈추지 않고 계속 수영을 하는 게 신기했다.
풀장 바깥에서도 걸음걸이가 늦고 팔다리 휘젓는 것도 나보다 훨씬 엉성한데 계속 왔다갔다를 반복하는 게 신기했다.
나는 수영을 하지 않고 그분들을 주시했다.

하루만에 깨닫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깨달은 건 그분들이 천천히 한다는 것이었다.
나도 어깨가 아픈데 연세드신 분이 젊은이처럼 팔다리를 휘젓다간 온갖 근육통으로 고생을 하실 것이다.
‘저래서 물에 뜰 수 있나? 저래서 앞으로 갈 수 있나?’ 걱정될 정도로 천천히 저었다.
그래도 물에 뜨고, 그래도 앞으로 가고, 그래도 나보다 훨씬 오래 왕복했다.

자기 페이스를 찾는 것,
자기 템포에 자기를 맞추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에 들어가서 직접 해보니 내 페이스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육지에서 편하게 걷는 것처럼 해야 한다는데, 팔다리를 휘저어도 숨이 차지 않고, 그렇다고 물 속으로 빠져 들 정도로 천천히 하면 안되는 속도는 도대체 어느 정도인가?
한동안 운동으로서의 수영을 하지 않고 그 속도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드디어 찾았다.
어깨도 별로 아프지 않고, 숨이 힘들게 차지도 않는 속도를 발견했다.
이제 쉬는 시간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계속 왕복할 수 있을 정도까지 됐다.

다만 전에 내가 추월했던 어르신이 나를 천천히 추월하는 수모를 감당하면 됐다.
‘이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지’라고 조금 속도를 내기도 해봤지만 이내 수영장 가장자리를 붙잡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더 큰 수모를 겪기도 했다.
나중에는 ‘나이는 내가 젊지만 저 양반은 오래 수영을 했고, 나는 배운지 얼마 안돼서 그런거야’라며 추월하든 말든 신경쓰지 않았다.
사실 굼벵이 수영에서 속도자랑이 얼마나 웃기고 어이없는 일인가.

나는 30대 중반에 중형교회에 담임이 됐다.
이런저런 시선들 앞에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힘을 줬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살라고 성도들에게 요구하는 설교를 많이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 자신이 안쓰럽고, 그 때 성도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 뿐이다.
내 페이스를 제대로 찾지 못했고, 나도 힘들고 숨가쁘면서 성도들에게도 그런 템포를 요구했으니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며 따라준 성도들이 고맙기만 하다.

나는 이제 새로운 페이스를 찾으며 적응하려 한다.
이제는 힘부터 빼려고 한다.
보통 새해 첫날에는 “힘 내자” 구령을 외치곤 하는데, 나는 첫날부터 힘 빼기 타령이다.
힘줘 봐야 힘만 들지 되는 일도 없다는 걸 늦게나마 깨달았고, 이제는 서로가 아픈 일을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도 행복하고, 나와 만나는 사람들도 행복했으면 한다.

요한복음 21:21,22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