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자리

어릴 때부터 기도할 때는 무릎을 꿇도록 배웠다.
가정예배할 때나, 수련회 가서도, 혼자 산에 올라가서 기도할 때에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런데 40대에 들어서면서 무릎에 이상이 생겼다.
병원에 갔더니 등산을 하냐고 물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관악산 등산을 한다고 했더니 그만 두고 평지를 걸으라고 했다.
그 때부터 등산을 멀리한 것 같다.

쪼그려 앉거나 무릎 꿇는 자세를 하지 말라고 했다.
전에는 무릎 꿇고 한 시간도 넘게 기도하기도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무릎 꿇고 기도하면 얼마 견디지 못하고 자세를 이리저리로 계속 바꿔야 했다.
그 때부터 무릎 꿇고 오래 기도하지 않았다.

낮은울타리를 꾸미고 둘러보다가 하나 빠진 것을 발견했다.
‘기도하는 자리’이다.
물론 아무데서나 기도할 수도 있지만 일부러라도 기도의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처음엔 보료 같이 두꺼운 방석 하나 갖다 놓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고민하던 중 TV를 통해 어느 천주교 신부님의 이야기를 보게 됐다.
내 눈을 끈 것은 그 신부님이 성당 지하의 개인 기도실에서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무릎을 받침대에 올려서 무릎을 꿇지만 완전히 접지 않고 90도만 꿇고 팔꿈치를 책상에 올리고 기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 하면 되겠다’ 생각했다.

마트에 가서 조립식 작은 책상, 발 받침대, 쿠션을 샀다.
발 받침대에 쿠션을 접착제로 붙이고 무릎 받침대로 쓰니 딱이었다.
이스라엘과 터키를 방문했을 때 기념품점에서 구입한 소품을 갖다 놓고, 내가 주로 읽는 성경도 갖다 놨다.
책상 위에 선물로 받은 십자가도 걸었다.

낮은울타리에 마련한 기도상 [사진 강신욱]

나는 낮은울타리에 오면 겉옷을 벗어 옷장에 걸고, 먼저 이 곳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도배 후 이곳에서 처음 기도할 때 불현듯 떠올랐던 예레미야 33:2,3 말씀을 먼저 암송하고 부산을 축복하고 낮은울타리가 복된 장소가 되길 기도한다.

기도상에서 기도하는 모습 [사진 한창수]

이어 그 자세로 성경을 읽는다.
말 그대로 ‘봉독(奉讀)’,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읽는 마음으로 읽는다.
내밀한 그 시간이 훨씬 풍성하게 다가온다.

기도상에서 기도 후 성경을 읽는 모습

하나님께 드리고 함께하는 시간을 좋은 형식으로 담고 싶어 작게 준비했는데, 하나님은 더 풍성히 주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