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다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니 치노가 심심해 하는 게 보였다.
일부러 소파에서 길게 앉아 책을 읽으니 내 옆에 몸을 붙이고 누웠다.
이내 숨소리를 내며 자는 모습이 귀여워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몸을 조금 일으키니 눈을 떴다.
아주 새끼 때엔 벌떡 일어나 눈 앞에 시커먼 카메라를 의식하더니 요즘은 눈만 껌뻑껌뻑하다가 다시 잠든다.
시커먼 걸로 주인이 뭘 하는지 이젠 훤히 알기 때문이다.
나는 50년 넘는 인생을 살고 소위 모태신앙으로 살았지만, 아직도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려는지 잘 모르겠다.
문득 ‘개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을 알리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역사를 알리고, 그 구원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살아야 할 지 알리는 책이 성경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성경에 ‘알지 못한다’는 표현이 의외로 많다.
멸망을 앞둔 유다가 나중에 회복된다는 예언을 하는 이사야나 예레미야 같은 선지서야 하나님이 어떻게 택하신 백성을 멸망시키시려는지 또한 구체적으로 회복시키실 지 가늠할 수 없으니 ‘알지 못한다’는 표현이 많은 게 당연할 것이다.
시선을 끄는 건 성경에서 인간 중 가장 지혜롭다는 솔로몬이 쓴 전도서에 분량이 대여섯 배나 많은 선지서에 버금갈 만큼 ‘알지 못한다’는 내용이 나온다는 점이다.
선지서는 주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지 알려주시는데도 반응하지 않는 것을 말하지만, 전도서는 자기가 모르겠다고 한다.
참 솔직하고 겸손한 표현이다.
논어에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앎’이라고 했다던데, 그런 면에서 삼천 잠언을 말하고, 동물학과 식물학까지 섭렵하여 당대에 주변 국가에까지 소문이 났던 솔로몬(왕상 4:29-34)은 참 지혜자라 할 수 있다.
절대자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인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연구하여 그 지혜와 능력을 깨닫고, 아는 것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나누고 모르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용기있게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 지혜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도 지혜자가 되는 건가?
개만도 못한 수준에서 지혜자까지 널을 뛴다.
오늘 내 마음이 평안치 못하다는 반증이다.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전도서 8:17)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 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 (전도서 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