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서 내가 하는 일과 관련해서 생각이 복잡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는 비신자들을 접촉하는데 나를 목사로 소개하는 것보다 다른 직업을 가지면 훨씬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다.
2018년 중반 담임목사를 사임하고 가장 먼저했던 고민 중 하나였다.
실제로 직업학교에 문의하기도 했다.
또 다른 하나는 가장으로서 성장해 가는 아이들, 특히 예고를 다니는 셋째와 장차 농장을 운영하고 싶은 막내에게 필요한 교육을 충분히 해주지 못하는 미안함 때문이었다.
내 사역을 귀하게 여긴 분들의 후원금을 아이들의 교육비로 사용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역을 후원한다는 것은 사역자의 일상을 후원하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에 일부 자녀교육비로 사용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고, 나도 담임목사 시절 선교사에게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받는 입장이 되고 보니 쉽지 않다.
며칠 전 아내와 두 딸에게 개인적인 대화의 기회를 얻어 식비, 특히 간식비를 좀 줄이자고 말했다.
청소년인 두 딸은 요즘 아이들처럼 먹기도 잘 먹고 간식도 잘 먹는다.
부모로서 아이들이 잘 먹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는 것은 기쁨이다.
딸들 학비나 예고를 다니는 아이가 그나마 하나 받고 있는 전공레슨을 줄일 수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식비 이야기를 꺼냈다.
가장으로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아내나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그나마 두 아들이 군대에 가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이틀 전 꿈을 꾸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누군가에게 “저는 목사입니다”라고 이야기한 것만 기억한다.
꿈 속에서 내가 그렇게 사는 것에 대한 이유를 밝히는 것이다.
꿈을 깨고 가만히 앉아 한참을 생각했다.
낮은울타리 기도상에 무릎을 꿇었다.
내가 세상 염려에 마음이 흔들렸고, 사역을 내가 내 능력과 친화력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으로 착각했고, 아이들을 내가 지금까지 키운 것처럼 교만했던 것을 회개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마태복음 6:31-33의 말씀을 다시 기억하고 내가 마땅히 구할 바를 기도했다.
나직한 음성으로 꿈 속에서 내가 했던 말을 되뇌인다.
“저는 목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