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친구 아들을 조치원에 있는 기숙사에 태워주면서 하루 휴가낸 대학 친구와 차 안에서 장시간 대화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를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에 대뜸 내가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만약 10대나 20대로 돌아간다면 뭘 하고 싶니? 많은 사람들은 공부를 더 열심히 할 것이라고 한다던데”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친구는 약간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법대는 안갈거다”
“왜?”
“법대 나오니까 뭔가 생산적인 일이 아니라 뒤치닥거리같은 일만 하는 것 같아”
“그럼 어디 가려고? 이과?”
“아니, 상대”
“왜? 회계사 하려고?”
“아니, 좀 생산적인 직장생활 하고 싶어서”
친구도 법대 출신으로서 학교를 다닐 때는 고시 준비를 했지만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느라 일반 회사에 취직했다.
그런데 법대 출신이라 법적인 일 처리하는 역할을 주로 한 것이다.
똑똑한 친구라 일처리는 깔끔하게 했다.
하지만 법적인 일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분명히 구린 부분이 있다.
내부적으로는 구린 부분 재발방지를 위해 임원은 물론이고 사주와 부딪히기도 했단다.
그러니 얼마나 피곤했을까.
친구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내 차례가 됐다.
“나는 학창시절로 돌아간다면 사람들을 넓게 사귀고 싶어. 난 천로역정의 순례자처럼 사람들과 너무 거리를 둔 것 같아. 대학 때도 수업만 마치면 난 그냥 집에 갔잖아. 그 때 동기는 물론이고 선배나 후배들도 만나고, 다른 동아리 사람들도 좀 만나고 그랬어야 하는데 말야”
“그렇게 만나면 술밖에 더 마시냐?”
“술은 몸이 받지 않으니 안마셨겠지. 하지만 내가 목사가 되면서 성경을 잘 공부해 보니 비기독교인을 만나지 않는 게 거룩이 아냐. 거룩하게 산답시고 너무 벽을 치고 산 것 같아서 그게 후회스러워. 그게 거룩도 아닌데 말야. 앞으로는 이런 후회를 다시 하지 않으려고 해. 기독교는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만들고 관계를 만들어 주는 거야.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난 그렇게 살고 싶어. 그럴려면 만나야지. 어릴 땐 깨닫지 못했으니까 깨달은 지금부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