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담임목사 사퇴의사를 밝히고 부산에 내려왔을 때 임시로 얻은 아파트 단지에서 한 할머니를 만났다.
아파트 단지를 관통하는 도로가에 거의 노숙자와 비슷할 정도의 초라한 행색으로 길거리에 외로이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어서 내 시선을 끌었다.
몇 차례 가까이 지나치며 어떤 분인지 살피는데 근처에 오는 사람도 없이 늘 혼자 앉아 있었다.
그 할머니가 불쌍해 보여 가끔씩 과자 봉지를 드리며 인사를 드렸다.
그후로 간간이 대화를 시도하며 할머니는 아흔이 넘었고, 오래전 당시 20대의 아들을 먼저 보내는 큰 슬픔을 겪으신 것을 알게 됐다.
2년 전인가 그 할머니 보다 훨씬 더 나이들어 보이고 수염을 길렀으며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가 곁에 계신 걸 봤는데 물어보니 남편이라고 했다.
얼마 뒤 그 남편분이 돌아가신 걸로 기억한다.
그 때부터 할머니의 주름이 더 깊어진 것 같다.
한번은 용기를 내고 다가가서 “할머니, 저 기억하시겠어요? 예수님을 믿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워낙 독보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할머니라 말을 거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내가 말을 걸었더니 의외라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 보더니 “나 불교 믿는데”라고 하셨다.
“괜찮습니다. 예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불교였지요. 그냥 너무 힘들 때 ‘예수님’이라고 부르시면 좋겠습니다”
할머니는 다시 나를 응시하셨다.
서울에서 다시 내려온 후 낮은울타리 장소로 바로 그 단지의 아파트를 얻었다.
그 할머니는 여전히 그 자리에 계셨다.
다만 늘 의자에 앉아 계셨는데 의자가 없이 쪼그려 앉아 계셨다.
“할머니, 저 기억하시죠?”
할머니는 기억하는 눈치였다.
“기억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의자 어떡해 하셨어요? 쪼그려 앉으면 다리 아프실텐데요?”
“몰라. 누가 치웠어. 내가 집에서 가져온 내 의잔데…”
도로가 좁은 보도에 의자까지 갖다 놓고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줄담배를 피워대니 그렇게 하지 말라고 의자를 치운 모양이다.
그후로 할머니는 늘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웠다.
나는 가끔 과자 봉지를 갖다 드렸다.
그런데 오늘 문득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 것을 알게 됐다.
그동안 이른 시간에 아파트 단지 끝자락에 있는 낮은울타리에 갔다가 해가 진 다음 돌아오다 보니 그 할머니를 잊고 있었다.
두 달은 된 것 같다.
그 할머니는 한 겨울에도 심지어 비가 올 때도 나와 계신 분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그런 날씨에도 나와 계셨을까?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돌아가신 것 아니냐고 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인데 아주 오래 전 일처럼 여겨진다.
예수님의 이름을 한번 더 들려 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뭔가 헛헛하다고나 할까.
한동안 할머니의 빈 자리를 자주 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