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3/7) 셋째의 담임교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학급 절반이 확진이 되었는데 셋째도 인후통이 있어 조퇴를 하고 PCR검사를 하는 게 낫겠다는 것이다.
멀게만 느껴져 안전하게 생각했던 태풍이 훅 가까이 다가온 것 같았다.
셋째를 데리고 바로 보건소로 가서 PCR검사를 받았다.
다음날 아침 검사여부에 대한 문자가 오지 않았다.
오전이 다 지나갈 무렵에도 문자가 오지 않아 부녀는 함께 예상했다.
음성이면 그냥 통보하면 되니까 오전에 바로 되지만, 양성이면 대책과 관리까지 통보해야 되니까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거다.
정말 그 이유가 맞는지는 모르지만 셋째는 확진자가 되었고 나는 동거인이 되었다.
다행히 아내는 휴가로, 막내는 기숙학교로 떠나 있었다.
나만 3일 이내 PCR 검사를 받으면 됐다.
고맙게도 음성이 나왔다.
3차까지 맞은 백신 덕분인가 생각했다.
셋째는 엄마도 없는데 인후통과 발열, 오한, 몸살, 코막힘, 가래를 차례로 겪었다.
셋째를 혼자만 방 안에 가두고 혼자만 음식을 먹게 하고 싶지 않았다.
셋째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주문하고, 같이 식탁에 앉아 마주보고 먹었다.
셋째는 “이렇게 먹으면 안되는 것 아녜요?”라고 물었다.
“이러면 안되지. 그런데 아빠는 이렇게 해주고 싶어”
금요일 아침까지 자가검사키트로 음성이 나왔다.
안심하고 성경공부도 하고 막내를 데리고 왔다.
휴가를 마친 아내는 집으로 가지 않고 낮은울타리에 있기로 했다.
나도 막내를 낮은울타리로 데리고 가기로 했다.
문제는 막내를 데리고 오다가 휴게소에 들렀을 때 생긴 것 같다.
날씨가 좋아 가는 길에 안에 입었던 히트텍도 벗었고, 오는 길엔 겉옷도 벗었다.
급히 움직이느라 점심을 먹지 못해 휴게소 야외에서 어묵탕을 먹었다.
입은 뜨끈했지만 오후 4시가 되어가는 휴게소는 썰렁한 바람이 불었다.
등에 오싹한 느낌이 왔다.
불길했다.
토요일(3/12) 아침 인후통이 생겼다.
PCR검사를 받으러 갔다.
줄이 너무 길어 1시간 30분 넘게 기다린 것 같다.
일요일 아침 8시에 확진이 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가장 먼저 이번 주 수요일(3/16) 제대하는 첫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가 부대 앞에 가서 마중하기로 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첫째는 아니라며 내게 얼른 나으라고 했다.
이어 낮은울타리를 도피처로 사용하던 아내와 막내에게도 알렸다.
아내와 막내는 감사하게도 자가검사키트로 음성이 나왔다.
동시에 셋째도 집에서 검사를 했는데 음성이 나왔다.
나는 집 창문을 다 열고 환기시키고 음성 식구들 맞을 준비를 했다.
나는 혼자 도피처 낮은울타리로 갈 짐을 쌌다.
일요일 저녁 무슨 작전을 하듯이 거처를 바꿨다.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세정제로 곳곳을 소독했다.
나는 낮은울타리로 옮겨 바리바리 챙겨온 약과 먹을 것을 정돈했다.
슬슬 몸이 아파오기 시작해서 챙겨 온 약을 먹었다.
격리 해제되자마자 월요일부터 등교해야 하는 셋째에게 문자를 보냈다.
“수고 많았다. 아빠도 아파보니 좀 힘드네. 이걸 진수가 견뎌냈다고 생각하니 대단하다 싶다”
“아빠, 저랑 같이 밥 드셔주셔서 감사해요. 아프신데 계속 저랑 같이 있어 주셔서 감사해요. 사랑해요, 아빠”
“진수가 조금이라도 덜 힘들고 덜 외롭게 아빠가 해줄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했어. 같이 맛있게 재밌게 잘 보낸 거잖아 ㅎㅎ”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해요”
마음은 즐거운데 몸이 힘들다.
약을 먹어도 잠이 오지 않아 너무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