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입은 치유자

헨리 나우엔의 ‘상처입은 치유자’라는 책이 엄청나게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제목이 워낙 인상적이라 책 제목인 줄도 모르고 사용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나도 책을 읽었고, 그 표현을 설교나 상담에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깨달았다.
시어처럼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남을 치유할 수 있을 정도로 상처라면, 그 상처는 그 사람에겐 치명상이라는 것을.

나도 가끔 내 이야기로 다른 사람을 위로할 때가 있는데, 그건 바로 내가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일에 대한 경험담이었다.
그것도 잠깐이 아닌 몇 년 또는 현재도 고통스러워하는 일에 대한.

거의 죽음에 이르는 상처가 있어야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생채기나 삔 정도로는 치유할 수 없다.
죽고 싶을 정도로 아픈 사람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깨달았다.
‘예수님은 우리를 치유하시기 위해 그 고통을 당하셨구나’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죽으셨구나’

예수님이 아무도 모르게 외로이 당하셨을 고통이 조금 가늠됐다.
‘예수님도 이런 고통을 당하신 것이군요’
‘정말 저의 고통을 이해하실 수 있으시군요’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