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성경공부(6) – 전 2:1-2

오늘은 성경공부하는 책상에 앉았을 때 두 부부가 똑같이 A4지 인쇄물을 꺼냈다.
“그게 뭔가요?”
“전도서 2장을 프린트한 겁니다”
자세히 보니 전도서 2장이 조금 큰 글씨로 적혀 있었고, 오른편과 아래쪽에 노트처럼 가로줄이 그어진 빈 공간이 있었다.
남편분이 필기를 하기 위해 일부러 만들었다고 하셨다.
1장을 공부할 때 그냥 성경에 메모하기엔 내용이 너무 많았나 보다.
열심히 필기하기 위해 본문과 노트를 함께 만들어 오신 마음이 너무 귀하고 감사했다.

“전도서 2장 1절만 한번 읽어 보세요. 어떤 단어가 가장 많이 반복되고 있나요?”
“‘나’요”
“맞습니다. 1인칭 ‘나’와 ‘내’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2번 나오는 ‘너’도 결국 자신을 말하는 것이니까 1절에 ‘나’가 5번 나오는 겁니다”
“많이 나오네요”
“누가복음 12장 16절부터 19절까지 찾아서 한번 읽어 보시겠어요”

누가복음 12:16-19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이건 예수님이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 비유입니다. 이 넉 절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단어를 찾아 보시겠어요?”
속으로 다시 읽으시더니 “‘내가’가 많이 나오네요”
“예, 맞습니다. 우리 말로도 6번이 나오는데요, 헬라어는 인칭에 따라 동사가 다르게 생겼거든요. 그러니까 각 동사마다 ‘내가’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헐고, 내가 짓고, 내가 쌓고, 내가 쉬고, 내가 먹고, 내가 마시고, 내가 즐거워하겠다는 거죠”

“보통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흥청망청하게 됩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그걸 하겠다는 거예요. ‘내가 나를 즐겁게 하고 내가 낙을 누리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솔로몬에게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걸 ‘시험삼아’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시험삼아’라는 단어를 영어로 하면 ‘prove, test’입니다. 뭔가 증명해 보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돈 많은 것 자랑하고, 흥청망청 쓰고 싶고, 왕이니까 마음대로 일탈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럼 무엇 때문일까요? 솔로몬은 2절에 자기가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했노라고 말합니다. ‘웃음을 따르는 삶은 미친 것이고, 희락은 실로 무익하다’라고 했다는 겁니다. 잠언 14장 13절을 한번 찾아 읽어 주시겠어요?”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예, 웃는다고 마음 100%가 웃는 것 아니라 정반대의 슬픔도 내면에 같이 있고, 즐겁다고 마음 100%가 즐거운 것 아니라 마음 구석 어딘가에는 근심도 같이 있다는 겁니다. 이미 솔로몬이 이런 말들을 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작정하고 사치, 유흥, 향락에 빠져 보겠다는 겁니다”
“왜죠? 솔로몬은 지혜로운 사람인데요”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예? 진리를 찾기 위해 유흥에 빠진다고요?”
“예, 이런 사조가 그리스 철학에도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아리스티포스가 주창한 ‘쾌락주의’입니다. ‘헤도니즘(Hedonism)’이라고도 하는데, 이걸 주장한 학파가 ‘퀴레네학파’입니다. ‘학파’라고 했지요? 이건 그냥 향락에 빠지는 게 아니라 진리와 지식을 추구하는 철학의 한 사조입니다. 실은 그리스에 쾌락주의 철학이 나오기 약 600년 전에 솔로몬이 다 해본 겁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지요”

“이런 흐름은 지금도 있습니다. 바로 ‘공리주의(功利主義)입니다. 19세기 제레미 벤담에 의해 주장된 것인데,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예, 맞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행복을 누리게 하자는 건데, 참 좋게 들립니다. 아주 좋은 복지국가가 하는 일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내면을 가만히 살펴 보면 그 저변에 ‘쾌락주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쾌락’은 나쁜 의미가 아닙니다. 그냥 ‘행복’이라고 봐도 좋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행복’하면 그게 ‘진리’ 아니냐는 거죠. 과연 그럴까요? 솔로몬이 바로 그 일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을 던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