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성경공부(13) – 전 4:1

전도서를 같이 공부하는 부부는 낮은울타리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살고 있다.
가까운 거리니까 운동 겸 걸어서 온다고 했다.
최소 20분은 일찍 오시는 것 같다.
한번은 내가 집에서 식사를 하고 약속 시간 30분 전에 낮은울타리에 도착했더니 이미 아파트 앞에 와 계시기도 했다.

오늘은 약속 시간이 되었는데도 초인종이 울리지 않았다.
혹시 내가 요일을 헷갈렸나 생각하고 전화를 했더니 엘리베이터로 올라오는 중이라고 했다.
남편분이 통화를 한 시간이나 하느라 늦어져 승용차를 타고 왔다는 것이다.
아내분은 길게 통화한 남편을 약간 원망하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남편분은 그저 허허하고 웃기만 했다.
“그래도 늦지 않으셨어요. 딱 시간에 맞춰 오셨습니다. 그러면 됐죠”

“잠언과 전도서는 둘 다 지혜서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제가 어릴 때도 그렇고, 제가 어른이 되어 아이를 기를 때도 그렇고, 기독교인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잠언은 읽히면서 전도서는 권하는 것 같지 않더라고요. 두 분은 그렇지 않으셨어요?”
“맞아요, 저희도 아이들 키우면서 전도서를 읽으라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전도서도 지혜서인데?”
“전도서가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런 이유가 큰 것 같습니다. 잠언은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지혜로운 삶을 가르쳐 줍니다. 부모의 훈계를 들어라, 음녀를 멀리하라,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게 인생을 더 많이 배운다 등등. 반면 전도서는 처음부터 헛되다고 하니 혹시라도 아이들이 허무주의나 염세주의에 빠질까 부모는 염려하게 되죠. 이건 그동안 한국 기독교가 적극적 사고방식이나 번영주의적 신앙 색깔을 견지했기 때문인 영향도 있을 겁니다.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열심히 고지를 향해 뛰어야 하는데 가만히 앉아 인생을 찬찬히 반추하고 있으면 뒤처지는 거니까요”
“맞아요. 다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고 성공하는 것이 축복이라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전도서를 직접 읽으며 한 절씩 공부해 보니까 어떠세요?”
“제가 전도서를 정말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정말 깊은 진리를 담고 있는 책 같아요. 요즘 공부시간이 기다려져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4장입니다. 먼저 1절부터 9절까지 한 절씩 돌아가며 읽겠습니다”
햇살이 들어오는 방에서 여럿이 테이블에 둘러 앉아 성경을 한 절씩 돌아가며 소리내어 읽는 것만으로 감동이다.
할 일이 많고 생각도 많지만 운동을 하고 걷고 뛰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처럼, 잠시 내가 주도하는 삶을 중단하고 겸허히 그리고 잔잔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시간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잠시 속세를 떠난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 시간이다.

“1절을 다시 보십시오. 어떤 단어가 반복되는 것이 보이세요?”
“학대요”
“또요?”
“위로자가 없도다”
“예, ‘학대’라는 단어는 3번, ‘위로자가 없다’라는 표현은 2번 반복됩니다. ‘학대’는 누가 누구에게 하는 건가요?”
“힘 센 사람이 약한 사람에게 하는 거죠”
“힘 센 사람은 어떻게 하다가 힘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재물을 많이 갖게 되어서 아닐까요?”
“권세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특정한 사람에게 권세를 허락하시는 것일까요?”
“글쎄요?”

“계급은 인간의 타락이후 생겼습니다. 처음엔 그냥 육체의 힘이 센 사람이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고, 더 나은 무기를 가진 사람, 더 많은 부하를 가진 사람이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재물을 차지하게 되었고,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의 법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적어도 이스라엘에서는 그런 학대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백성이 억울하지 않도록 율법에도 여러 가지 내용을 주셨지요. 그걸 중간 관리들이 공정하게 행하도록 권력의 정점에서 점검하고 챙길 사람이 바로 왕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왕이 선정을 베풀려 해도 중간 관리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학대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전에 했던 질문인데 또 묻겠습니다. 홍길동전의 배경이 되는 시대가 언제라고요?”
“세종대왕 때요”
“이제 이건 확실히 기억하시겠습니다 ㅎㅎ”
“예, 그럴 것 같아요”

“세종대왕은 우리가 알기로 선정을 베풀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은 왕이지만 지방 관리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서자에 대한 차별이나, 민초들의 삶은 여전히 피폐했다는 거죠. 아마 솔로몬 시대에도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선정을 베풀려고 했지만 왕의 뜻이 백성에게까지 잘 전달되지 않는 걸 발견한 겁니다. 자신이 왕으로서 백성의 좋은 위로자가 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을 고백합니다. 이 ‘위로자가 없도다’라는 말에서 아주 작고 연약한 한 사람 한 사람에게까지 진정한 위로자가 되실 구원자에 대한 기다림과 열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게 그런 의미이군요”
“전도서도 지혜를 말하는 책이고, 참 지혜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이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