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성경공부(14) – 전 4:2-6

“솔로몬이 1절에서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권세자의 학대와 연약한 자들의 눈물과 구원자가 없음을 토로했습니다. 자신이 모든 권력의 정점인 왕임에도 불구하고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학대를 없앨 수 없고 구원자가 될 수 없는 한계를 솔직히 말한 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용기있는 고백인 거죠. 여기에서 솔로몬은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학대를 없애겠다고 다짐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2절과 3절에서 반복되는 표현을 찾아 보시겠어요?”
“더 복되다”
“예, 이 세상에는 학대가 끊임없이 행해지니, 2절에서는 그 참상을 다시 보거나 겪을 이유가 없는 이미 죽은 사람들이 더 복되다고 하고, 3절에서는 아직 태어나지 않아 그 학대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더 복되다고 한 겁니다. 이 표현에 공의를 행하고 싶은 왕으로서 솔로몬이 겪은 절망을 엿볼 수 있습니다”

“4절에 사람들이 수고를 많이 하고 재주를 동원한다고 했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요. 사람들이 왜 그럴까요?”
“높은 자리 올라 가고, 돈을 많이 가지려고요”
“그렇죠. 가난하고 약하면 학대를 받으니까 학대 받지 않는 자리에 가기 위해 애쓰는 겁니다. 이 사람들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일찍 파악한 똑똑한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개천에서 용 나듯 소수가 학대 받지 않는 자리에 이르는 성공담이 가끔씩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면 학대 받는 자의 서러움을 이 사람들이 약자가 학대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쓸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요”
“우리가 느끼기에 그렇습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 생각하지 못한다는 속담대로입니다. 오히려 자기에게 약한 시절이 없었던 것처럼 과거를 지우려고 하죠. 그럼 올라간 사람은 올라간 사람대로 여전히 약한 자의 자리에서 시기하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서로 공동체성을 해하게 됩니다”

“5절에는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 수고도 하지 않으면서 자기 몸만 축낸다고 합니다. ‘꼬시래기 제 살 뜯기’라는 말처럼 자기 살이나 뜯어 먹는다는 겁니다. 힘 없고 약한 사람들은 부당함과 불의한 학대에 대해 뭉쳐서 저항이라도 해야 하는데,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건 학대를 자초하는 일이고 어리석은 일이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군사 독재가 있던 1987년도에 민주항쟁이 일어나 시민은 물론이고 학생들도 길거리로 나서지 않았습니까? 개개인은 약하지만 국민이 하나로 뭉치는 현명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민주주의를 우리가 누리고 있는 거죠”

“6절에는 어떤 표현이 대조가 되고 있습니다. 한번 찾아 보세요”
“두 손과 한 손”
“맞습니다. 사람들은 두 손에 가득 채우기 위해 수고합니다. 좀더 풍성하고 완벽한 삶을 추구하는 거죠. 그런데 솔로몬은 한 손만 채우고 다른 한 손은 비울 것을 말합니다. 그게 더 낫다는 겁니다. 한 손을 가득 채우려면 어느 정도 수고는 해야 합니다. 그러나 두 손을 가득 채우는 수고 보다는 덜하겠지요. 거기까지만 하자는 겁니다. 그러면 뭔가 부족한 삶이 될 겁니다. 어떤 부분에는 결핍이 있는 소박한 삶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전도자는 무엇이 더 낫다고 합니까?”
“평온함요”
“한 손을 비워 거기에 평온함을 채우라는 겁니다. 평온함은 어디에서 올까요? 우리는 더 높이 오르고 더 많이 가져야 평온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거죠. 다른 한 손에 채워져야 하는 평온함은 어디에서 오는지 7절 이하에서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