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부터 켭니다

낮은울타리에 들어오면 내가 목사니까 기도부터 하는 줄 알면 오산이다.
처음 두세 달은 그렇게 했다.

3월 중순 코로나 자가격리를 겪고 나서는 TV부터 켠다.
혼자만의 적막이 싫기 때문이다.
목사가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TV를 의지한다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주님이 위로로 TV를 주신 줄 알고 감사히 본다.

전문가가 혼자 강의하는 건 보지 않는다.
여럿이 나와 왁자지껄 떠드는 예능을 튼다.
아니면 클래식 채널을 튼다.
독주가 아니라 주로 관현악단 연주를 찾는다.

TV를 거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디오를 켜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게다.
처음엔 낮은울타리 가득 음악이 흐르도록 그렇게 했다.
그러나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게 싫었다.

오늘도 오자마자 TV부터 틀었다.
플라시도 도밍고가 노래한다.
수만 명이 모인 야외무대에서 관현악단을 배경으로 노래하는 그의 모습이 정말 멋있다.

야외공연장에서 노래하는 생전의 플라시도 도밍고 [화면캡처 강신욱]

이제 볼 수 없는 그의 연주를 넋놓고 봤다.
듣지 않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