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성경공부를 하는 부부가 제주도 초콜릿을 들고 오셨다.
“웬 제주도 초콜릿인가요?”
“아들이 취직을 했다고 지난 주에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런데 그걸 다 가지고 오시면 어떡합니까?”
“저희는 단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아… 그럼 제가 맛있게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먼저 8장 1절부터 6절까지 한 절씩 돌아가며 읽었다.
“1절에 ‘지혜자’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가 나옵니다. 이제까지 전도서의 흐름으로 봤을 때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믿는 자요?”
“예, 맞습니다. 창조의 지혜와 능력을 가진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인도와 처분이 옳다고 신뢰하는 자이지요. 세상 살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지혜라는 겁니다. 그 지혜를 가진 자는 얼굴에 광채가 난다고 합니다. 혹시 성경에 얼굴에 광채가 났던 사람을 기억하세요?”
“예수님요?”
“그렇죠,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광채가 나는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이셨죠. 예수님 말고 그냥 사람 중에서는요?”
“금방 생각이 나지 않는데요”
“대표적인 사람이 모세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하다가 해방된 후 시나이 광야에 이르렀을 때 혼자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십계명을 받아 내려왔지요. 모세 자신은 몰랐지만 얼굴에 광채가 나서 사람들이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수건으로 얼굴을 가려야 할 정도라고 했습니다. 얼굴에 광채가 나서 하나님을 경험한 티를 팍팍 내는 것이 성도의 목적일까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일까요? 얼굴에 광채가 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일까요?”
“아닌 것 같은데요”
“바로 이어지는 다음 표현을 보면 ‘그의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 아브라함을 예로 들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민족을 이루게 해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나안으로 들어온 것이 몇 살이죠?”
“75세요”
“그리고 몇 살에 아들 이삭을 낳았지요?”
“100살이지요”
“그럼 민족은 고사하고 아들 하나를 낳는데 몇 년을 기다린 겁니까?”
“25년이네요”
“그냥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오래 기다렸다가 낳는 경우도 있지만 아브라함에게는 먼저 하나님이 약속을 해주셨지요. 25년이나 기다릴 바에는 굳이 미리 약속을 하시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요?”
“그러네요”
“그럼 아브라함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다려야죠”
“그냥 기다리나요?”
“약속이 언제 이루어질지 바라면서 기다리겠지요”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아내 사라의 생리가 끊어졌다가 다시 회춘하는 기적을 경험하면서 100세에 아들 하나를 얻었습니다. 사라는 다시 출산을 하지 못하고 사망했습니다. 아들 이삭은 40세에 결혼했습니다. 민족을 이루려면 빨리 출산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삭도 20년간 자식을 갖지 못합니다. 이삭이 60세가 되어 에서와 야곱 쌍둥이를 낳습니다. 아브라함은 160세가 되어 손자를 본 것입니다. 그리고 175세에 죽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175세까지 100년을 보내면서 같이 사는 식구라곤 아들 며느리와 쌍둥이 손자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오래 기다렸지만 민족을 이룬다는 약속의 성취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으로 불립니다. 왜일까요? 그는 그 100년 동안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객지에서 나그네로 사는 동안 여러 일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존재, 능력, 다스리심, 심판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그를 기다리게 했습니다. 아마 나그네의 설움이 더 컸다면 아브라함은 견디지 못하고 친지가 있는 고향 땅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기다림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루하루 살아내야 하는 인생과 현실은 답답하지만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신뢰하며 참고 기다리는 것이 믿음이죠. 이런 아브라함이 만약 어려운 일을 당하면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여기에도 무슨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어려운 일을 겪으니 더욱 하나님의 약속과 신실하심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1절 마지막에 ‘얼굴이 사납다’는 표현이 있는데 언제 얼굴이 사나와 질까요?”
“글쎄요?”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그러나 이 대답을 한 남편 분은 그럴 것 같기도 하다.
늘 ‘허허’하고 웃기만 하고 다른 표정을 본 적이 없다.
“내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았을 때요”
아내 분이 내가 원하는 대답을 했다.
“그렇죠. 보통 그렇습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사나워지는 사람이 만약 일이 원하는 대로 되면 어떨까요?”
“즐거워하겠지요”
“실은 그 사람은 지금 내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사람인 겁니다. 이 사람이 과연 행복한 사람일까요? 지혜로와 보이세요?”
“아니요”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한다는 것은 또한 좋은 일이 생겼다고 호들갑을 떨며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사람인 거죠.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선하게 주관하신다는 것을 신뢰하는 믿음 때문에 일엽편주처럼 심하게 요동치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그렇군요”
“그렇다고 감정이 없는 목석같은 사람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니까 그 슬픔과 기쁨을 하나님께 아뢴다는 거죠. 그리고 우는 자와 함께 울기도 하고 웃는 자와 함께 웃기도 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