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은 휴가

2011년 5월, 지금 생각해 보니 공황장애 초기증상이었던 것 같다.
2010년, 만 4년만에 건축위원회 구성부터 교회당 신축을 마치고, 5월 입당 후 연말까지 주일예배는 물론이고 새벽기도회와 수요예배, 금요기도회까지 모든 설교를 도맡아서 했다.
아니나 다를까 몸에 이상이 찾아왔다.
7월에 가족들과의 휴가 일정이 잡혀 있었지만 난 장로님들께 몸이 이상하다며 6월에 쉬어야 할 것을 요청했다.

초여름인 6월에 혼자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통증을 겪어보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길동무를 하거나 식사를 하기도 하고, 고등학교 친구의 안내로 난생 처음 야구장에 가서 사직구장의 명물인 쓰레기 봉투를 뒤집어 쓰고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러 보기도 했다.
물론 주말에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한 달 정도 그렇게 시간을 보냈더니 좀 괜찮아졌다.

어제 아내가 휴가를 떠났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했다.
부산역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나는 10년 전에 그런 시간을 가졌으면서 아내에게는 그런 시간을 줄 생각을 못한 나를 책했다.
그 때 나만 힘든 게 아니었는데, 혼자 네 아이들 챙기느라 너무 힘들었을텐데.
너무 후회가 된다.

비록 너무 늦은 휴가지만 좋은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