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터 (6)까지 차례로 읽어 주세요.
내가 트랜스젠더와 성경공부를 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봤다.
일단 지금 나와 성경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싫어할 것 같았다.
“목사님이 트랜스젠더와 성경공부를 한다면, 저희들은 목사님과 성경공부를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비신자들을 만나고 전도하고 성경공부하는 사역을 귀하게 보고 후원하는 사람들 중 후원을 중단하는 사람이 생길 것 같았다.
또 지역 목사들이 이상한 시선을 보내거나 공개적으로 비난할 것 같았다.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목사로서의 무언가를 크게 흔들 만한 일생일대의 모험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트랜스젠더가 어느 지역 교회 예배에 참여한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봤다.
교인들이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예배당에 입장을 할 수 있을까?
만약 착석했다면 끝까지 예배를 참석할 수 있을까?
옆에 앉은 사람들이 후다닥 다른 자리로 옮기지 않을까?
그날은 어떻게 마치더라도 주중에 교역자의 전화벨이 쉼 없이 울리지 않을까?
‘그 사람 트랜스젠더 맞죠? 우리 교회에 오지 못하게 하세요. 아이들이 교회에서 뭘 배우겠어요?’라는 요청을 받지 않을까?
아마 ‘신천지 출입금지’ 포스터 옆에 ‘트랜스젠더 출입금지’ 포스터도 붙이지 않을까?
트랜스젠더가 복음을 들을 기회, 성경공부를 할 기회, 예배에 참석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누가할 수 있는 것인가?
예수님은 그들의 길과 진리와 생명은 될 수 없는 것인가?
그런데 내가 지난 20년간 그렇게 목회를 해왔던 것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높은 장벽을 쌓고, 걸러진 사람들만 교회에 들어올 수 있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고대인들은 땅이 평평하다고 믿었다.
땅끝은 무한한 낭떠러지라고 믿었다.
그런 절망의 낭떠러지에 몰려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난 사회는 물론이고 가족으로부터도 인간 취급 받지 못하는 트랜스젠더가 그런 사람들이 아닌가 한다.
TV에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 있다.
60이 넘은 트랜스젠더는 얼굴과 몸이 무너져 내려가고 있었다.
외롭게 늙어가며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몸에 대해 말하며 그저 눈물을 흘리는 그 사람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
트랜스젠더는 아마 자신의 미래를 예상할 것이다.
지금은 주로 유흥업소에서 일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갈 곳이 없다는 것을.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먹고 살기 위해 그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들도 복음이 필요하다.
옛날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세리와 창녀를 만나주셨지만, 만약 지금 예수님이 오신다면 교회당에 들어갈 수 없는 트랜스젠더를 만나주실 것 같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실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이 예수의 제자들이 이르러야 하는 이 시대의 땅끝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