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리 교단이 많아요?(1)

기독교라는 큰 울타리 안에 여러 교단이 있다.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왜 그렇게 교단이 다양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기독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불교에도 조계종, 천태종 등 교단이 있고, 천주교에도 교단까지는 아니더라도 어거스틴 수도회, 프란시스 수도회 등 나름 강조점이 다른 분파가 있고, 이슬람교에도 수니파와 시아파가 있다.
다른 종교도 그렇듯 기독교도 다 교단이 나뉜 이유가 있다.

장로교는 구약의 족장회의와 신약의 사도회의처럼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재판하지 않고 협의체의 성격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정치형태이다.
종교개혁이후 존 칼빈과 그 신앙을 물려 받은 청교도가 이 제도를 구체화시켰다.
비단 개교회에서 끝나지 않고 지역 중심의 노회와 국가 중심의 총회도 마찬가지다.
거의 1년직인 노회장이나 총회장도 회의를 주재하는 의장 역할이지 그에게 별다른 특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감리교는 영국의 기독교가 세속화되었을 때 존 웨슬리가 구별되고 규모있는 신앙생활을 강조하면서 등장했다.
수직적 조직과 규모있는 생활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자극을 받았고, 다른 교단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침례교는 미국의 대각성운동 후 전국적으로 유행한 순회전도집회 영향이 많다.
심오한 교리보다는 성경에 있는 내용을 말하려 하고, 특히 강단에서는 단순히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매주 전하고 “오늘 이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믿기 원하는 분은 자리에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라는 소위 ‘콜링’을 한다.
개인의 구체적이고 확실한 신앙고백과 그에 대한 교회의 반응을 강조한다.

순복음은 너무 이성적인 흐름에 반하여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강조한다.
기독교는 지식적인 동의가 아닌 체험의 종교이다.
특히 성경에 언급된 ‘성령의 은사’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교단은 그 시대의 기독교의 모습에서 무언가 아쉬운 역사적 배경을 통해 바른 신앙을 갖자는 모토 아래에서 탄생했다.
그 역사적 배경 아래에서는 반작용을 통해 분명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서 오늘에 이르렀지만, 그것만이 옳다는 식은 곤란하다.
그 시대에는 맞았지만 다른 시대에는 오히려 그릇되이 치우칠 우려가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장로교의 영향이 크다.
심지어 다른 교단에도 장로교의 제도를 따르는 것과 같은 모양도 있다.
워낙 장로교가 많이 알려지고 ‘장로’라는 직분이 알려져 그런 것 같다.

주의할 것은 특정 교단이나 교회의 운영제도가 참 건전해 보여도 그것이 구원의 진리가 아니다.
구원의 진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다만 이 땅의 어떤 교회도 완전할 수 없고 어떤 교단도 완벽할 수 없기에 그 시대를 잘 분별하고 교회와 교단이 개인이나 어느 분파의 전횡에 빠지지 않는 제도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목사에게만 맡기지 말고 모든 성도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