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대하여

나는 SNS를 한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평균 하루에 하나 정도 사진과 글을 올리는 편이다.
인스타그램은 사진이 우선이기 때문에 사진 중심으로, 페이스북은 이야기 중심이라 글을 올린다.

어떤 사람들은 SNS가 시간 낭비라고 하고,
목사가 SNS를 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SNS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사람들과의 소통이다.
지난 20년간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목사와 성도라는 관계 속에서 주로 사람을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SNS 친구를 신청하면 대부분 다 받는다.
간혹 내 친구를 사찰하고 이단이라고 알려 주는 사람도 있다.
나는 감사하다고, 알고 있다고 답한다.
이단인 걸 알면서 어떻게 페친을 유지하냐며 의아해 한다.
나는 다양한 사람과 소통하고 싶어 SNS를 하는 것이지 SNS 안에서까지 기독교인과만 소통하고, 평소 잘 하지도 않는 ‘할렐루야’나 ‘아멘’을 댓글로 달고 싶지 않다.
다른 교회, 다른 지역, 다른 스타일의 목사나 성도, 비신자, 심지어 들이대지만 않는다면 이단까지 다양하게 소통하고 싶다.

둘째는 옛 친구들과의 소통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이사도 했고, 연락처도 바뀌었다.
게다가 난 지난 20년간 주말에 시간을 낼 수 없는 목사로 산 덕분에 거의 모든 친구와 연락이 끊겼다.
처음엔 교회에서 대화가 전혀 없는 남자 성도와 소통하기 위해 SNS를 시작했는데, 의외로 옛 친구들과 연결이 되기 시작해 얼마나 반갑고 기뻤는지 모른다.
내가 오늘의 패션(#ootd)이나 애완견 이야기, 자녀들 이야기를 올리는 건 친구들과의 소통을 위해서이다.
그러면 옛 친구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기도 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며 나이 먹어가는 일상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셋째는 기독교인들과의 소통이다.
내가 평범하지 않은 길로 들어서다 보니 다양한 스타일로 사역하는 사람들이나 그들의 삶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외롭기도 하고 힘들기도 해서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는 걸 알기에, 그들도 똑같이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 여겨 ‘좋아요’를 누르고 가끔씩 ‘댓글’을 단다.
그리고 후배 목회자들에게 이런 사역도 있고, 이런 삶도 있다는 걸 소개하고 싶어서이다.

이렇게 다양한 소통을 하게 되어 감사하다.
그러나 SNS로 인한 스트레스도 있다.
주로 고구마 기독교인들 때문이다.

첫째는 욕설이 난무하는 유튜브를 퍼다 나르며 자신의 정치적 입장만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바로 차단한다.

둘째는 목사가 거룩하지 못하게 옷이나 개 이야기를 올린다며 훈계하는 사람들이다.
의도를 모르면 차라리 물을 것이지 남의 사생활에 웬 참견인지.
차단을 참고 있는 중이다.

셋째는 친구들이 예수님을 믿게 될 것이라고 신앙적 격려를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친구들을 개종하기 위해 그들과 소통하고 만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일이 있으면 좋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친구로서 소통하고 만난다.
그런데 거기에 마치 종교적 영업실적을 올린 듯한 표현을 하는 것은 마음이 어렵다.
내 친구들이 댓글들을 본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은 듯한 표현에 심히 민망하다.
나를 격려하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실은 전혀 격려가 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의 ‘좋아요’나 댓글을 원하는 게 아니라 친구와의 소통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에 ‘할렐루야’를 달아 버리면 내 친구들이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 여지가 없다.
정말 답답하다.

나도 이리 답답한데, 내 친구들이나 다른 비기독교인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비신자들만 받는 계정을 따로 만들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사이다를 마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