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Q와 교회, 그리고 복음

오늘 큰 아들이 내게 물었다.
“아빠, 만약 동성애자가 교회에 나오면 동성애를 끊게 되나요?”
큰 아들은 외국에서 잠시 지내면서 LGBTQ(성소수자 중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성정체성에 의문을 품은 사람(Questioner)을 말함)가 많고 그것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경험했는데, 이것이 기독교나 교회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동성애자가 교회에 나오면 동성애를 회개할까?”
“그러겠죠. 성경에 죄라고 했으니까요.”
“성경에 죄라고 한 다른 죄들을 범한 사람들은 회개하면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게 되니?”
“아니요.”
“동성애도 똑같애.”
“그런데 본인이 하지 않으려고 해야 되잖아요.”
“성경에 동성애를 죄라고 하고 있으니 동성애자가 교회에 나온다는 건 일단 그 부분을 인정한 거잖아. 그러니 회개도 하고 자기 속에서 동성애 욕구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겠지. 하지만 사람이 결심하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요.”
“동성애자든 아닌 사람이든 사람은 연약하니까 또 죄를 짓겠지. 다른 죄를 짓는 사람들도 다시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부득이 하게 죄를 범하지. 그렇다면 회개하고도 다시 그 죄를 짓는 사람들은 교회에 나오면 안되는 걸까? 다음에 다시 회개하면 안되는 걸까?”
“아니요.”
“그렇지? 주일마다 회개하는 죄는 자신이 매일 반복하는 그 죄야.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멀쩡하게 교회 잘 다니잖아. 아마 회개를 하면서도 자신이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을 걸. 그리고 주중에 다시 죄도 잘 짓겠지. 그런데 동성애에 대해서만 범하면 지옥갈 죄처럼, 동성애는 회개해도 용서가 안되는 죄처럼, 회개해도 의심하고 혐오의 시선으로 보는 건 잘못이야. 마치 예수님의 속죄의 은혜가 동성애는 넘지 못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다른 죄는 다 용서해도 동성애는 용서하지 않는 것처럼. 로마서 1장에 나오는 순리를 역리대로 쓰는 것이 동성애 뿐일까? 권력과 재물을 가진 자들이 힘없고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는 것이 더 심각한 역리이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해하는 일이고, 성경에도 하나님이 아주 악하다고 선지자들을 통해 지적하고 심판하신 일이야. 그러나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입을 다물고 동성애가 나라와 교회를 망칠 죄처럼 여기는 게 이상하지. 예수님은 모든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이고, 교회는 그 정도의 일로 망쳐지는 존재가 아니야..”
“음…”
“예수님 당시 유대교는 세리와 창녀를 혐오했고, 성전에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지.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일부러 찾아가서 만나고 심지어 밥도 같이 먹었어. 그래서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미워했던 거야. 자기들이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버젓이 만나고 같이 밥을 먹으니. 예수님은 속죄의 은혜가 미치지 못할 대상이 없다는 걸 몸소 보여주신 거지.”

“그런데 만약 LGBTQ가 교회에 나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좀 복잡할 것 같은데요…”
“아마 교역자에게 ‘저 사람 나오지 못하게 하세요.’라고 하겠지. 교역자가 ‘왜요?’라고 물으면 ‘LGBTQ인데 아이들 교육상 좋지 않아요.’라고 할거야. 그리고 금방 어떤 조치가 내려지지 않으면 다른 교회로 옮겨 가면서 그 교회를 LGBTQ를 죄라고 하지 않는, 그래서 성경을 벗어난 교회라고 맹비난을 하고 주변에 소문을 내겠지. 만약에 예수님이 만나주셨던 창녀가 교회에 나오면 어떨까? 괜찮을까?”
“비슷하겠지요.”
“그럼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 아니냐?”
“그러게요.”
“죄를 죄라고 가르치는 것과 특정 죄나 죄인을 더 무겁거나 천국에 가지 못할 죄인처럼 혐오하는 것은 별개야. 그런데 이걸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아. 자기들도 부지기수로 죄를 짓고 심지어 회개도 하지 않으면서. 다만 동성애를 하지 않는다는 걸로 그들을 혐오하고 상대적으로 자신이 동성애를 행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의인인 척 하는 건 잘못된 태도라고 봐. 아마 그런 인간들 중에는 간통하는 사람들도 있을 걸. 간통은 이성애니까 교회에 나와도 괜찮고 동성애는 짐승도 하지 않는 짓이니까 교회에 나오면 안된다는 기준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거지.”
“그렇구나.”
“우리 아파트에 트랜스젠터 합숙소가 있는 것 알지?”
“예.”
“아빠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어.”
“아…”
“기존 교회가 예수님을 믿고 싶어하는 동성애자를 용납하지 않으니 목사가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건 좋다고 생각해. 하지만 여기서 경계해야 할 것이 있는데 동성애를 죄로 여기지 않는 동성애자를 모임까지 일부러 찾아가서 그들의 견해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이는 건 오버라는 생각이야. 혐오하지 않는 건 좋은데 그렇다고 선을 넘는 건 안된다고 봐.”

솔직한 질문을 해준 아들이 고마웠고,
식사시간에 이런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어 흐뭇했고,
내가 받은 복음의 탁월함을 아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