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료와 인심

공무원들의 특징 중 하나는 변함없는 성실함일 것이다.
공무원은 아니지만 건강보험공단이 한 달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전달하는 건강보험료 고지서를 보면 “참 성실하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지난 12월과 1월 고지서에 실상보다 많은 금액이 부과되었다.
작년에는 교회 명의 차량을 이용했으니 차량에 대한 부과가 없었으나 사임하며 11월 말에 구입한 차량이 내 명의로 되어 그만큼 인상됐다.
차량은 신속하게 부과대상이 되었으나 내 사임사실을 고지할 방법이 없었다.

12월 이사 전에는 서울에서 보험공단에 꾸준히 전화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콜센터 직원이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가 있어 통화에 어려움이 있다는 안내만 받을 뿐 통화가 되지 않았다.
직접 방문할까 했으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으니 웬만하면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해서 방문을 하지 않고 전화만 열심히 했다.
결국 통화를 하지 못한 채 그냥 이사를 했고, 부산에 와서도 전국공통 전화번호는 늘 불통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소득을 기준으로 한 보험료가 부과됐다.

오늘 건강보험 해운대지점을 직접 찾았다.
몇 명 기다렸다.
무슨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내 차례가 되어 사정을 말했더니 이리저리 확인하고는 재직기간이 명시된 퇴직증명서를 팩스로 보내면 자동으로 처리될 것이라고 알려줬다.
심지어 또 다른 감경사유가 있는지도 찾아봐줬다.
예상 질문은 적중하지 못했고, 오히려 내 편의를 배려하는 느낌을 받았다.

전화는 되지 않아 속을 끓이는데 직접 오니 의외로 친절하게 잘 응대해서 고마울 정도이면 당연히 직접방문을 할 수밖에 없다.
다음에도 혹시 이런 일이 생기면 통화 연결 기다리느라 기계음 들을 필요 없이 바로 방문해야겠다 생각했다.

월요일 비가 내린 탓에 차가 더러워져 돌아오는 길에 세차를 할 계획이었다.
처음엔 셀프세차장에 가려다가 보험료를 크게 감경받은 것이 기분 좋아 자영업자를 돕자는 마음으로 손세차장으로 갔다.
직원이 타이어에 흙이 좀 묻은 걸 보니 하부에도 흙이 묻었을 것 같다며 하부세차를 권했다.
평소 같으면 괜찮다고 할텐데 오늘은 평소가 아니다.
기꺼이 하부세차도 해달라고 했다.
세차장 사무실에서 기다리는 것도 지겹지 않았다.

차는 안팎으로 깨끗하고, 햇살은 눈부셨다.
이건 순전히 기분 영향이다.
풍년에 인심나고, 곳간에서 인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