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대 채플 설교(2) 꿈

수백 명의 비신자 대학생들에게 설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기뻤지만 또한 당연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예전 코스타코리아에서 2500명 청년들 앞에서 설교한 적이 있다.
그때는 전혀 부담도 없고 떨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왜 이러지?’라고 할 정도로 긴장과 부담이 몰려왔다.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문득 고등학교 시절로 기억되는 꿈이 떠올랐다.
학교 전교생 조회같이 운동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내가 철골로 된 조회대 위에 올라 단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꿈이었다.
그런데 모인 사람들은 외국인들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지만 나는 그냥 우리말로 준비한 원고를 읽었는데 내 입에서는 그들의 언어가 나왔다.
너무도 신기한 일이라 꿈속에서도 내가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내가 혹시 목사가 되어야 하나, 그것도 선교사가 되어야 하나?’ 생각하며 엄청 부담을 가졌었다.
어쩌다 보니 목사가 되었고 선교에 대한 마음도 많이 가졌지만 체질상 외국 음식도 먹지 못하는 스타일이라 선교사는 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되어 안심을 했다.

지금 생각하니 나는 지금까지 내가 주로 사용하는 기독교 언어가 아닌 비신자의 언어로 말해야 하는 ‘도시 선교’를 하고 있다.
꿈에서처럼 수많은 사람은 아닐지라도.

그런데 정말 꿈에 있었던 일이 현실화되었다.
물론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위 MZ세대는 완전 다른 세대라고 한다.
그런 20대 초반 대학생들 수백 명 앞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기대하며 약간 마음이 놓인 부분이 있다.
나는 그들의 언어로 말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바에 집중하면 되고, 전달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부산에서도 외진 영도, 선망하는 대학이 아닌 고신대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어떤 말씀을 전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나나 그들이나 사회적으로는 존재감이 없지만 우리가 지금 여기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걸 전하기로 했다.

나는 원래 설교 원고를 토씨까지 쓰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번 설교에 원고를 준비하면 무의식중에라도 원고를 보게 되고 그러면 청중들과의 아이콘택트를 놓칠 것 같았다.
그래서 설교원고를 준비하지 않기로 했다.
전날 저녁에는 계속 머리속으로 설교를 되뇌이며 흐름을 외기 위해 애썼다.
다시 긴장이 시작됐고, 그렇게 잠을 설치며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