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스런 기억과 기도

일요일 아침에 문득 시편 51편이 떠올랐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편 51:5)
생각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떠오른 다윗의 시로 묵상을 했다.

사도행전 13:22에 다윗에 대한 구절이 나온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다윗이 평생에 한 일 중 가장 하나님 마음에 합한 일이 무엇이었을까?
막내이면서도 들짐승의 위협 속에서도 집안의 양떼를 잘 지킨 일?
10대 후반의 나이에 팔레스타인 거인 장수 골리앗을 물맷돌로 쓰러뜨린 일?
오랜 시간 자신을 정적으로 여기고 죽이려 했던 사울에게 보복하지 않은 일?
친구 요나단과의 우정을 기억하고 그 후손에게 은혜를 베풀어 자신과 겸상하도록 조치한 일?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드리겠다고 자원한 일?
다윗이 한 일 중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왕의 지위를 이용해 신하의 아내를 빼앗고 그걸 감추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신하가 죽자 그 여인을 데려다가 자신의 아내로 삼은 치명적인 사건을 통해 자신이 본질상 죄인이며 철저한 죄인임을 고백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대뜸 내가 초등학교 4학년 어느 점심시간에 내 반찬을 허락도 없이 빼앗아 먹은 급우를 향해 상스런 욕을 했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 교실에서 같이 도시락을 드시던 선생님이 “신욱이답지 않게 웬 욕이냐?”라고 하셨던 것이 생생하게 귀에 맴돈다.
나름 모범생이었던 내가 교실이 울릴 만큼 큰소리로 상스런 욕을 했기 때문이다.
평소 욕을 거의 하지 않던 나도 내 입에서 그런 욕이 나온 것에 놀랐다.
더 놀라운 건 선생님의 말씀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쟤가 내 허락도 없이 반찬을 빼앗아 먹어서요.”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치사한 변명이 툭 튀어나왔다.
나는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게 한 그 급우를 향해 눈을 흘겼다.
머리 속에 마치 입체영상처럼 그 기억이 지나가자 방에 나 혼자밖에 없었지만 마치 많은 사람들 앞에 벌거벗은 것처럼 너무도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그와 함께 한 깨달음이 내 뇌리에 닿았다.
‘이게 바로 내 본질이고 내 수준이다.’

절로 기도가 나왔다.
“하나님, 이게 바로 저의 본질입니다. 아무리 가려도 감춰지지 않는 저의 수준입니다. 나이가 먹고 목사라고 해도 나아지지 않는 저의 실체입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 자신도 염증을 느끼는 저를 용납하시고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급우가 선생님과 급우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욕도 듣고 반찬을 빼앗아 먹었다고 면박을 당해 창피했을텐데 혹시 인생 살다가 저처럼 문득 그때의 일이 떠오른다면 상처로 남지 않게 해주십시오.”
내가 받은 은혜는 감사하지만 내가 남겼을 것 같은 상처가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