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을 말한다.
누가복음 11장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다.
이게 참 이상하다.
그들은 유대인이고, 회당에서 율법과 기도를 배웠을 것인데 말이다.
당시 그들에게 알려진 기도의 스타일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의 기도처럼 자기가 선민으로서 이렇게 살고 있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이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기도이다.
다른 하나는 세례 요한처럼 광야에서 금욕하며 생활하는 에세네파이다.
이들은 성전을 타락한 곳으로 보고 광야에 자기들만의 신앙공간을 만들어 공동생활을 했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아주 종교적이 신비로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인과 세리를 만나고, 사람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고, 기적을 베풀고,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과는 색다른 말씀을 전하셨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다른 종교로 인식된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한 것은 자연스러웠다.
예수님은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그분에게 마땅히 올려드려야 할 찬송, 그분의 통치가 온 땅에 임하기를 소망함, 하나님의 속죄와 공급하심, 성도가 이 땅에서 살아야 할 모습 등을 간구하는 것이라 가르치셨다.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예수님은 기도의 내용을 가르쳐 주셨는데, 사람들이 이것을 주문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주기도문을 외는 사람들이 마음을 담아 진지하게 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주로 모임을 마치는 주문처럼 사용한다.
마치 성경이나 성경구절이 적힌 종이나 액자를 부적처럼 사용하는 것처럼.
주기도문은 주문이 아니라 기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