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전도서에 대한 책을 쓰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전도서에 대한 생각을 듣게 되었어. 보통 전도서에 대한 인상을 ‘헛되다’로 갖고 있더라고. 문득 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한데 말해 줄 수 있니?”
“물론 ‘헛되다’가 많이 남죠. 그런데 그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도서를 다 그렇게까지만 듣고 알고 있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고1때 전도서를 읽었는데(그 이후론 전도서를 읽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사실 글을 읽고 이해할 정도의 사람이 전도서를 끝까지 다 읽으면 ‘다 헛되고 헛되다’라고만 생각은 안들거예요.”
“우와, 우리 아들 똑똑하다.”
“한국 교회 전체적 분위기가 전도서 시작이 ‘헛되고 헛되니 헛되다’라고 해서 다들 듣기 거북하고 피하는 분위기라 그렇지, 그래도 성경인데 성경의 교훈이 ‘다 헛되다’인게 말이 되나요?”
“그러게 말야.”
“솔로몬 정도 되는 사람이니까 ‘다 헛되다 헛되다’ 했던 거지, 우리가 ‘그래, 다 헛된데 열심히 살아서 뭐하니?’하는 건 말이 안되는 것 같아요.”
“같은 말이라도 의미가 다르고 무게가 다른 거다?”
“전도서를 읽을 때 초점을 ‘헛되다’에 두고 읽다 보니… 물론 분위기가 그러니까 아예 배제시키고 읽을 수는 없겠지만요. 그래도 ‘전도서도 지혜서다’라는 시각으로 읽는다면 달라지지 않을까요?”
“처음부터 편견을 가지고 읽은 부작용이라는 거구나.”
“세상에 제일 가는, 전에도 없었고, 후로도 없을 지혜를 얻고도 진리를 찾으려던 솔로몬의 노력…”
“제대로 문장을 만들어서 아빠에게 보내줄래?”
그렇게 해서 얻은 장남의 글이다.
‘헛되다’라는 말이 거북하게 들려 전도서 읽기 시작 자체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자신이 가진 삶의 목적과 가치가 불분명해지고 희미해질까봐.
전도서는 전무후무한 부와 지혜를 갖고도 진리를, 복음을 찾으려던 솔로몬의 노력의 흔적이다.
전도서도 지혜서이고, 전도서도 성경이다.
읽기 꺼려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삶의 목적과 가치가 분명하고 뚜렷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