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내려와서 목사들의 소속인 노회에 갔더니 나이가 많은 목사님이 폰으로 특별한 것 없는 장면들을 사진을 찍고 있었다.
솔직히 좀 산만했고 눈에 거슬렸다.
나중에 단톡방에 그 사진들을 올렸는데 딱히 잘 찍은 사진도 아니었다.
알고보니 어느 상가 건물에서 작은 교회를 담임하는 분이었다.
이분이 은퇴를 할 때 후임을 구하지 않고 공간을 빌려 예배하는 중년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와 합병하는 것을 보고 좀 다르게 보았다.
교회 합병은 잘 된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목사들 단톡방에 일상의 자연을 찍은 사진과 안부를 묻는 글을 올리는 걸 보면서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는 걸 느꼈다.
얼마 후 암이 발견되었고, 오늘 아침 그분의 발인예배에 참석했다.
어젯밤 노회에서 하는 위로예배에 참석했지만 발인예배 참석인원이 적으면 유가족이 허전할 것 같아 한번 더 해운대에서 부산 반대편까지 걸음했다.
예배에 참석하며 이 목사님의 행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듣게 됐다.
교회 합병 전에 성도들에게 합병하는 교회의 젊은 목사님 말씀에 잘 따르라고 신신당부하고, 젊은 목사님에게는 자신을 위한 교회 예산을 책정하지 말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간혹 목사들이 은퇴하며 교회를 재정적으로 힘들게 하거나 후임 목사에게 갑질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혀 그런 부담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후임 목사에게 “용돈이 생겼는데 나눠씁시다”라며 카톡으로 돈을 보냈다고 한다.
오늘 발인예배 때 그분을 그리는 동료 목사님의 시가 낭송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아 그렇습니까
- 고 김청구 목사 부르심에
형님같은 친구 있느냐 묻는다면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넓으면서 깊은 목사 보았느냐면
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자애로운 아버지냐 묻는다면
그렇다 할 수 있습니까
기둥같은 남편이었느냐면
그렇다 말할 수 있습니까
김청구 아저씨는 그런 사람
구렁텅이나 앞을 막는 벽 앞에서
아 그렇습니까
아 그렇습니까
심지어 원수 앞에서도
아 그렇습니까
한 마디 말씀으로 받으셨던 어른
깨진 그릇이든
못다한 꿈이든
떨어진 꽃잎이든
다대포 바다보다 넓은 가슴으로 삭혀
결국 고운 꽃으로 피어내는 궁량
오래 그려서 길게 걸러서
멋진 형상으로 만들어내는
큰 바위 얼굴같은 분이여
형님같은 친구
바다같은 목사님
오래 기다려준 아버지
늘 옆에 있던 지아비
청구라는 사내여
벌써 보고싶은
오래도록 울림이 있는 교훈
청구 노인의 말씀
아 그렇습니까
아 그렇습니까
- 친구 최충산 근배
나는 그분과 한번도 개인적으로 말을 섞어본 적도 없고 솔직히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데, 왜 그분이 이리도 그리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