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하는 사업장 방문

3월 2일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에서 쉬는데 전화가 왔다.
다른 교회의 성도지만, 그 교회 목사님의 부탁으로 개업한 카페를 종종 방문하고 SNS에 올려서 홍보하기도 했다.
“목사님, 오늘 룩업커피를 닫습니다. 물건을 정리하는데 혹시 낮은울타리에 필요한 것 없을까 생각나서 전화드렸습니다.”
광리단길 커피 맛집이었고 말렌카 케이크를 처음 맛본 곳이라 내심 서운했지만 연말에 몰아닥친 불경기의 광풍을 비껴나가기가 여의치 않았던 모양이다.

낮은울타리는 좁은 공간이라 사실 다른 물건은 더 필요치 않다.
다만 폐업하고 물건을 정리하는 자영업자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예,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집기와 물건들이 어수선하게 놓인 상황이 나를 반가이 맞는 두 분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했다.

“불쑥 전화드렸는데 와주셔서 감사해요.”
“저를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심지어 더 좋은 집으로 이사가고 더 좋은 차로 바꿀 때에도 지난 집이나 차에 대한 복잡한 마음이 생기는데, 사업장을 닫으시니 얼마나 마음이 복잡할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겪어본 사람만 아는 거죠.”

공교롭게 오늘 낮은울타리 예배에서 때에 대한 설교를 했는데, 그 이야기를 나눴다.
“모내기를 할 때 모는 기대를 했을 겁니다. 한참 자랄 땐 뿌듯하기도 했을 거고요. 그런데 잘못한 것도 없는데 석 달만에 싹둑 낫질을 당할 땐 황당하고 기분이 더러웠을 거예요. 하지만 알곡을 남겼죠. 우리 인생도 그런 것 같아요. 이곳에 심으셨던 하나님이 뽑기도 하시지요. 하지만 분명히 하나님께서 남기신 게 있을 겁니다. 일단 저를 만나셨고요 ㅎㅎ“
”맞네요. 여기 덕분에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생각해보니 남은 것들이 많네요.“
”졸업을 해야 상급 학교로 진학하듯 인생에도 매듭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사를 가서 새 가구를 들여놓으려면 헌 가구를 버려야 하듯 여기서 잡고 있던 뭔가를 놓아야 새로운 걸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두 분은 와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소품으로 썼던 쿠션을 한 보따리 안겨주셨다.
비오는 휴일이라 교통정체가 너무 심했지만 한 가정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기꺼이 지불하고픈 대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