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활절이다.
아파트 옆 단지에 살고 계시는 장모님은 거동이 불편하셔서 온라인으로 젊은 시절부터 다니셨던 교회의 예배를 참석하신다.
그러나 오늘같은 날 80세 넘으신 분이 혼자 온라인으로 예배하는 건 정서적으로 힘드신 일인 것 같아 함께 예배하자고 청했다.
혼자 있고 싶기도 하고 거동이 힘들어 채비를 하기도 어려우니 그냥 있겠다고 하셨다.
처음엔 혼자 계시고 싶은 마음을 존중해서 그냥 일어설까 하다가 그러지 마시고 같이 가시자고 채근했다.
그냥 겉옷만 걸치고 차를 타고 가시면 된다고 했다.
가셔서 같이 예배도 하고, 식사도 하자고 했다.
다른 일로 마음이 어려웠던 이야기를 좀 하시더니 그러자며 일어 나셨다.
장모님이 오시고, 생일을 맞아 부산에 내려온 둘째도 있어 오랜만에 6개의 빵조각과 6개의 잔을 준비하고 예배를 시작했다.
사도신경을 천천히 뜻을 생각하며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고백했다.
요즘 사도신경을 읽을 때마다 울컥한다.
내가 이것을 믿고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기적같은 일인지 새삼 감사하는 시간이 된다.
찬송가는 168장을 골랐다.
예수님의 생애부터 죽으심, 부활, 재림까지 고백하는 아주 좋은 찬송이다.
너무 빠르게 부르지 않고 오히려 조금 천천히 부르면 그 가사와 함께 감동으로 부를 수 있는 찬송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1절을 지나며 음성이 끊겼다.
센스있는 막내는 일어나서 휴지를 건넸다.
참던 나도 마지막 절에서 눈물을 흘렸다.
내게는 셋째가 휴지를 건넸다.
이어 개인별 찬송을 하는데, 우리 가족에게는 익숙하지만 장모님께는 생소한 것이라 왜 이런 것을 하는지 설명했다.
나부터 개인별 찬송을 돌아가며 했는데, 장모님도 “나도 할 말이 있다”시며 자손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감사의 고백을 하셨다.
막내는 의외로 지난 주간에 친구들과 언쟁이 있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내용인즉 친한 친구 4명이 있는데 모두 불교라면서 기독교를 비난했다는 것이다.
막내는 순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당하기만 한 것 같다.
그저 눈물만 뚝뚝 흘리니 자초지종을 알 수가 없다.
늘 좋은 평가만 받고 인기가 많은 막내로서는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아빠도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다 그랬어. 이런 삶을 사는 게 기독교인의 고난이야. 이런 일을 겪어 본 적이 없어 너무 힘들겠다. 아빠는 그런 친구들을 위해 30년간 기도했는데, 이제 은수도 그런 기도를 시작해야 될 때인가 보다”
고린도전서 15:12-15를 같이 읽고 설교를 했다.
기독교가 사랑과 구제만 있으면 사회에서 환영받겠지만, 죄를 말하고 예수님만 믿어야 된다고 하고 부활을 말하니 배척당하지만 성도에게는 부활이 신앙에서 포기할 수 없는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출애굽이나 유다의 바벨론 포로 귀환이 그들의 시대에도 얼마나 막연하고 전설같은 이야기로 들렸을까 물었다.
애굽이나 바벨론 사람들은 노예생활이 힘드니까 그런 전설같은 이야기로 자위하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애굽에 열 재앙이 내려 출애굽이 됐고, 어느 날 갑자기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칙령을 내려 고향 땅으로 돌아가고 싶은 민족은 돌아가라고 하는 바람에 돌아가게 됐다.
그들이 노력하고 수고해서 된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그런 날이 온 것이다.
부활도 마찬가지인데, 우리가 소망을 잃지 말라고 구약에 그런 사건을 기록한 것이라 설명해 줬다.
그래서 그 소망을 되새기는 주일 예배가 중요하고, 성경을 읽고 찬송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시고 부활은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 약속된 이 일을 잘 간직하기 위해 우리 가족은 이 중요한 일을 계속해 나가자고 했다.
이어 성찬을 행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신 말씀을 언급하고 그 구원의 은혜가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에게 임했음을 고백했다.
구약과 신약의 축도를 하고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