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산불 대피소 봉사

3월 23일(일) 발생한 최악의 산불로 수십 명이 사망했고, 막대한 산림이 훼손됐다.
산불의 엄청난 규모에 사람의 손은 속수무책이었고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
뉴스보다 SNS를 통해 접하는 산불의 상황과 피해는 더 심각했다.

바로 다음날인 24일(월)부터 산불 현장에서 봉사한 구세군 박근일 사관님에게 도울 일이 없겠느냐고 문자를 보냈다.
26일(수) 박 사관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울산에서 커피트럭 봉사를 하는 백두용 목사님이 산불 대피소에서 커피트럭 봉사를 하고 싶다고 하는데 목요일에 동행하겠냐는 것이었다.

3월 27일(목) 아침 출근 시간 정체를 뚫고 범일동 구세군교회에서 박근일 사관님을 태우고 4시간만인 오전 11시 30분쯤 의성 대피소가 설치된 의성종합운동장에 도착했다.
운동장엔 산불진화용 헬기가 오르내리고, 대피소로 마련된 체육관 옆엔 이재민과 봉사자들을 위한 구세군 급식소가 운영되고 있었다.

운동장에 내린 헬기와 멀리 보이는 소방차 [사진 강신욱]
의성 대피소에서 운영중인 구세군 급식소

마침 울산에서 출발한 백 목사님도 도착했다.
얼른 급식소의 식사를 하고 커피 트럭 세팅을 했다.
생필품도 아닌 커피가 이재민과 봉사자에게 무슨 소용이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하룻밤 사이에 산불로 집을 잃은 사람들에겐 기호식품인 커피 한 잔이 마음을 진정시키는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
생업과 생활을 미루고 봉사현장에서 땀흘리는 사람들은 커피를 핑계로 잠시 숨을 돌린다.
낮은울타리의 단팥빵을 꺼내니 봉사자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생필품으론 목숨을 유지하지만 기호식품으론 인간다움을 확인한다.
그래서 구호현장엔 기호식품도 필요하다.

우로부터 백두용 목사, 박근일 사관, 의성 구세군교회 사관
낮은울타리가 준비한 단팥빵과 소보로 등

거기엔 불교에서 나온 봉사자들도 있었다.
나는 스님과 수고하신다며 인사를 나누고 단팥빵을 건넸다.
스님은 내게 보이차를 권했다.
구호 현장에선 종교를 따질 일이 아니다.

서울에서 밥차 사역을 한다는 탄경스님과 함께

가끔 물자를 실은 큰 트럭이 들어왔다.
그러면 남자들이 별로 없어서 소속 불문하고 모두 달려들어야 한다.
신속히 내리고 그 트럭은 역시 산불 피해를 입은 안동으로 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동원되었지만 큰 힘은 되지 못했다.

박근일 사관과 구호물자를 나르는 모습

다른 일정이 있어서 저녁 무렵에 돌아왔다.
감사한 것은 그곳에서 만난 분이 의성에 비가 내리는 영상을 보내주신 것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장거리 운전을 하고,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느라 온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이렇게라도 이재민이나 봉사자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속히 산불이 진화되고 복구작업이 진행되길 기대한다.
이재민들이 일상을 되찾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 조금이라도 짧아지길 기대한다.